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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시간도 반죽의 일부다” - 멈춤이 주는 힘 반죽을 하다 보면,어느 순간 손이 멈춘다.처음에는단지 팔이 아파서 쉬는 줄 알았다.하지만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그 멈춤의 시간,바로 그때 빵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는 것을.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쉬어가기’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치대고, 당기고, 접어 올리며 긴장했던 반죽 속에온기가 스며들고,밀가루와 물, 소금, 효모가서로를 알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사람의 손이 멈추면,반죽은 스스로의 리듬으로 움직인다.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반죽은 자신만의 결을 만들고, 또 단단해진다. 이 시간을 무시하고 서두르면,겉은 그럴듯해도속은 허무한 빵이 된다.빵뿐만 아니라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쉬어야 다시 단단해지고,잠시 멈춰야 다음 걸음을 내디딜 힘이 생긴다. 나는 오븐 옆에서 그 사실을 자주 떠올린다.열기와 소음 속에서도 .. 더보기
“가을, 발효가 더 깊어지는 계절” - 온도와 시간의 대화 가을이 오면공기가 달라진다.여름의 습하고급한 열기가 잦아들고,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스며든다.이때부터 빵 반죽은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온도가 낮아지고,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면서발효는 비로소 ‘대화’가 되는 계절이 된다. 여름엔 온도계를 자주 들여다보며발효의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조금만 방심해도 반죽은 숨이 차서 제멋대로 부풀었다. 하지만가을엔 반죽이 한결 느긋하다.천천히,그러나 확실하게 부풀어 오르며‘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나는 그 모습을 보며,빵이 아니라시간 그 자체를 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발효는기다림의 예술이다. 그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길 바라며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로 느끼며조용히 반죽과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 더보기
“추석 이후의 식탁” - 가족, 그리고 나눔의 온기 명절이 지나고 나면,집 안은 한결 조용해진다.북적이던 식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남은 전과 과일, 송편 몇 개가명절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하지만 그 잔잔한 풍경 속에서나는 늘 ‘빵 굽는 마음’을 떠올린다. 빵을 굽는다는 건어쩌면 명절의 마음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일이다.누군가를 위해 준비하고,기다리고, 나누는 그 과정 자체가가족의 식탁과 닮아 있다.오븐 속에서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바라보는 시간은솥 위에서 보글보글 끓던 명절 음식의 냄새와 겹쳐진다. 추석이 지나면,나는 남은 재료로 새로운 빵을 구워본다.밤, 단호박, 무화과, 쌀가루 같은 재료들.계절의 풍성함이남긴 흔적들을 버리지 않고,다시 새로운 맛으로이어가는 그 시간은마치 식탁 위의 온기를 다시 살려내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빵은,끝이 아닌 .. 더보기
빵 위에 남겨진 손길 -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빵을 굽다 보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오븐에서 막 나온 빵을 바라볼 때가 아닙니다.저에게 진짜 특별한 순간은그 빵에 손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입니다. 빵은 기계가 찍어내는 모양이 아닙니다.반죽을 접고, 모양을 잡고, 칼집을 내는 과정마다 사람의 호흡이 들어갑니다.칼집 하나의 깊이, 손끝의 힘, 반죽을 다루는 속도까지~그 모든 차이가 결국 빵 위에 흔적으로 남습니다.그래서 같은 레시피라도,같은 오븐이라도,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의 빵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바게트를 구웠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조심스럽게 칼집을 내며 “제발 잘 터져라” 하고 기도하던 마음,그 떨림이 그대로 빵 위의 결로 남았습니다.그리고 그 빵을 건네받은 누군가가 “따뜻하다”라고 말해주었을 때,단순한 맛 이.. 더보기
빵집에서 흐르는 시간 - 오븐의 불빛과 하루의 리듬 빵집의 하루는시계와는 조금 다른 리듬으로 흘러갑니다.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곳은 오븐입니다.따스한 불빛이 고요한 공간을 비추고,아직 잠든 마을 속에서 작은 불씨처럼 하루가 시작되지요. 이른 시간의 빵집은마치 또 다른 세상 같습니다.막 반죽을 마친 빵들이 줄지어 대기하고,숙성된 반죽은 차분히 오븐 속으로 들어갑니다.그 순간,이곳의 공기는 달라집니다.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퍼져 나가는 고소한 향,‘곧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은 빵집 안에서 독특하게 흐릅니다.한쪽에서는 발효가 천천히 진행되고,다른 쪽에서는 오븐의 열기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어느 하나 서두를 수 없고, 또 늦출 수도 없는 흐름.이 미묘한 균형 속에서 하루의 리듬이 만들어집니다... 더보기
첫 조각의 설렘 - 갓 구운 빵을 자를 때의 순간 빵을 굽는 긴 여정은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입니다.반죽이 천천히 숨 쉬며 부풀어 오르고,오븐 속에서 빵이 색을 입어가는 동안,빵을 굽는 사람의 마음은 늘 같은 생각에 닿습니다.“이 빵은 과연 어떤 얼굴로 나와줄까?” 오븐에서 꺼낸 따끈한 빵은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듯뜨거운 기운을 내뿜습니다.그 순간 가장 떨리는 일은 바로,첫 조각을 자르는 일입니다.칼이 바삭한 껍질을 스치고,안에서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날 때~그 소리와 향은 그동안의 기다림을 단숨에 보상해줍니다. 첫 조각은단순한 시식이 아닙니다.빵의 결을 눈으로 확인하고,식감과 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확인’의 순간이자,빵이 전해줄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지요.아직 식지 않은 따뜻한 숨결이 손끝으로 전해질 때,마치 오늘 하루가 작은 축제로 채워지는 듯합니다.. 더보기
식탁 위의 대화는 빵에서 시작된다 - 함께 하는 시간이 주는 힘 빵을 굽다 보면자주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막 구워낸 빵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을 때,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순간입니다.누군가는 빵을 썰고,누군가는 차를 준비하며,또 누군가는 웃으며 이야기를 건넵니다.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사람들을 이어주는 시작점이 됩니다. 어릴 적 기억 속에도 그런 장면이 있었습니다.저녁 식탁 위에 갓 구운 식빵이 놓이면,가족들은 먼저 한 조각씩 집어 들곤 했습니다.그 순간만큼은 텔레비전도,각자의 바쁜 하루도 잠시 잊혀졌습니다.따뜻한 빵 냄새가 집안을 채우면,자연스럽게 대화가 열리고 마음이 가까워졌습니다. 담다브레드가 굽고 싶은 빵도 바로 이런 빵입니다.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사람들의 대화를 열어주는 열쇠 같은 빵.바게트 한 조각을 찢어 나누며 안부를 묻고,고소한 .. 더보기
계절을 담은 빵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굽다 빵은 단순히 밀가루와 물, 이스트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빵 속에는늘 시간과 계절이 함께 들어갑니다.담다브레드는 빵 한 조각에도지금 이 순간의 계절이 묻어나기를 바랍니다. 봄의 빵은연두빛 설렘을 닮았습니다.막 움트는 새싹처럼 가볍고 산뜻한 재료가 어울립니다.쑥이나 딸기, 혹은 은은한 허브를 넣어 만든 빵은갓 피어난 꽃 향기처럼 입안에서 번집니다.첫 한 입이 주는 가벼움은,마치 긴 겨울 끝에 만난 햇살 같은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여름의 빵은조금 더 활기차고 강렬합니다.햇빛을 머금은 옥수수나 달콤한 블루베리,상큼한 레몬이 제철의 선물로 반죽에 스며듭니다.더위 속에서 쉽게 지치던 몸도,이런 상큼한 빵을 한 조각 베어 물면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여름의 빵은 그래서 ‘휴식 같은 활력’을 담고 있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