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공기가 달라진다.
여름의 습하고
급한 열기가 잦아들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스며든다.
이때부터 빵 반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온도가 낮아지고,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면서
발효는 비로소 ‘대화’가 되는 계절이 된다.
여름엔 온도계를 자주 들여다보며
발효의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반죽은 숨이 차서 제멋대로 부풀었다.
하지만
가을엔 반죽이 한결 느긋하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부풀어 오르며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빵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를 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발효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그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길 바라며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로 느끼며
조용히 반죽과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이다.
그날의 온도, 밀가루의 수분, 반죽의 질감까지~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변화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숨소리’가 있다.
가을의 발효는
그래서 더 진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속에서
효모는 자신만의 속도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 결과로 나온 빵은 단지 맛이 아니라,
계절의 결이 담긴 향과 질감을 품고 있다.
담다브레드가
이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빵을 굽는다는 건,
온도와 시간의 균형을 찾는 일이고
그 균형 속에서
자연의 흐름을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발효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요. 기다림이 맛을 만든답니다.”
오늘도 오븐 앞에서,
나는 그 말을 곱씹는다.
온도계를 한 번 내려놓고, 반죽을 살짝 눌러본다.
미세하게 되돌아오는 그 탄력이
가을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이 계절의 발효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난다.
빵을굽는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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