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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며 남은 반죽들 - 끝내 굽지 못한 생각과 배운 것들 한 해의 끝에 서면,작업대 위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됩니다.오늘 굽지 않은 반죽은 없는지,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 올해도 나는 많은 반죽을 만졌습니다.손에 익숙해진 것도 있었고,끝내 원하는 결을 만들지 못한 것도 있었지요.어떤 반죽은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 접어두었고,어떤 생각은 아직 꺼내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모두 굽지 못한 것이 꼭 실패는 아니었습니다.시간이 부족했던 날도 있었고,아직 내 손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날도 있었지요.그때는 아쉬움으로 남았지만,지금 생각해보면 그 반죽들은 나에게‘아직’이라는 시간을 알려준 것 같았습니다. 빵을 만들며 배운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모든 반죽이 같은 날,같은 속도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급하게 굽.. 더보기
겨울 주방의 풍경 -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오븐 사이 겨울 주방은문을 여는 순간부터 다릅니다.차가운 공기가 먼저 들어오고,그 뒤를 따라오븐의 열이 천천히 공간을 채웁니다. 이 계절의 주방은늘 두 가지 온도가 공존합니다. 손은 차갑고,반죽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입니다.물의 온도를 조금 더 살피고,반죽이 놀라지 않도록손길도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져요. 겨울에는빵이 사람을 시험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조금만 서두르면 바로 티가 나고,조금만 방심해도반죽은 제 속도를 잃어버리죠. 그래서 겨울 주방에서는자연스럽게 천천히 일하게 됩니다. 오븐의 불이 켜지면주방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차가웠던 공기 사이로따뜻한 열이 번지고,빵이 굽히는 소리와 향이조용히 공간을 채워요. 그 순간만큼은겨울도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은기다림이 자연스러운 계절입니다.빵도,.. 더보기
기다려야 맛이 완성되는 빵들 - 숙성과 시간의 역할 빵은 오븐에서 나오면 끝일 것 같지만,사실 어떤 빵들은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됩니다. 막 구워졌을 때보다하루, 이틀이 지나며맛이 더 깊어지는 빵들.그 빵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 슈톨렌이 그렇습니다.갓 구웠을 때보다며칠의 시간이 지나야버터와 과일, 견과의 맛이서로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존재감이 분명하지만시간이 흐르면서서로를 밀어내지 않고천천히 자리를 내어주죠. 그래서 슈톨렌은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빵입니다. 천연발효 빵도 비슷합니다.빠르게 부풀릴 수는 있지만담다브레드는굳이 서두르지 않으려 합니다. 발효종이 스스로 움직일 시간을 주고,반죽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립니다.그 시간 동안맛은 부드러워지고,산미는 정돈되며,속은 더 편안해집.. 더보기
겨울에만 굽는 이유 - 슈톨렌이 기다림을 닮은 빵인 까닭 슈톨렌은 언제든 만들 수 있는 빵입니다.재료도, 레시피도 사계절 내내 크게 다르지 않죠.그런데도 이 빵은늘 겨울이 와야만 생각납니다. 담다브레드가 슈톨렌을겨울에만 굽고 싶은 이유도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슈톨렌은굽는 순간보다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빵입니다. 오븐에서 나왔다고 해서곧바로 먹기 좋은 상태가 되지 않아요.버터가 스며들고,과일과 견과의 향이 어우러지고,며칠의 시간이 지나야비로소 이 빵의 표정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슈톨렌은만드는 사람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조금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요구합니다. 겨울이라는 계절도 닮아 있습니다.날은 짧고,무엇이든 천천히 움직이는 계절.서두르기보다조금 더 머무르게 되는 시간. 슈톨렌은 그런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따뜻한 차 옆에서얇게 썰어 한 조각씩.. 더보기
잘 팔리는 빵보다 오래 먹는 빵 - 담다브레드가 선택한 방향 빵을 배우다 보면한 번쯤 이런 질문을 듣게 됩니다. “이 빵, 잘 팔려요?” 처음엔 그 말이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빵의 맛이나 과정이 아니라결과부터 묻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빵집에게‘잘 팔리는 빵’은 중요합니다.현실적인 이유도 있고,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담다브레드는그 질문 뒤에다른 질문 하나를 더 얹어봅니다. “이 빵, 오래 먹어도 괜찮을까?” 처음 먹었을 때 화려한 빵은 많습니다.버터 향이 진하고,달콤함이 빠르게 다가오는 빵들.하지만 매일 먹기에는조금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죠. 담다브레드가 만들고 싶은 빵은한 번에 눈길을 끄는 빵보다는며칠, 몇 달이 지나도다시 생각나는 빵입니다. 그래서 재료를 고를 때도,배합을 정할 때도항상 기준은 같습니다. 과하지 않을 것.. 더보기
레시피를 그대로 만들지 않는 이유 - 기준은 있지만 답은 없는 빵 처음 빵을 배울 때는레시피가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중량, 온도, 시간까지정확히 지키면 같은 빵이 나올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빵을 만들수록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인데도어떤 날은 반죽이 지나치게 부드럽고,어떤 날은 유난히 단단했습니다. 분명 틀린 게 없는데결과는 늘 달랐어요.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레시피는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걸요. 담다브레드에는지키는 기준은 있습니다.재료를 대하는 태도,과하지 않게 만드는 방향,몸에 부담을 남기지 않는 선택들. 하지만 그 기준 안에서모든 빵을 똑같이 만들지는 않아요. 오늘의 날씨,반죽의 상태,오븐의 열,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컨디션까지—그날의 빵은 그날의 조건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담다브레드.. 더보기
하루를 여는 첫 반죽 - 빵집의 하루는 어디서 시작될까 빵집의 하루는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사실 그보다 훨씬 이전,아직 거리가 조용하고공기가 차가운 시간에 이미 시작돼요. 하루의 시작은 늘 첫 반죽을 만지는 순간입니다.물의 온도를 재고,밀가루의 촉감을 확인하고,손에 묻은 반죽의 상태를 천천히 느껴봅니다.이때가 되어서야오늘 하루의 컨디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요. 반죽은 늘 같지 않습니다.어제와 같은 레시피,같은 재료를 써도날씨, 습도, 온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죠. 그래서 담다브레드는하루를 정해진 순서가 아닌, 반죽의 상태에 맞춰 시작합니다. 오늘은 물을 조금 더 아껴야 할지,조금 더 기다려줘야 할지,아니면 손을 덜 대야 할지그 답은 반죽이 먼저 말해줍니다. 첫 반죽을 하며마음도 함께 정리됩니다.급한 마음을 내려놓고,오늘 해야 할.. 더보기
빵을 계속 배우는 이유 -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다짐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이 정도면 이제 혼자 해도 되지 않나요?”그럴 때마다잠깐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하게 됀다.아직은 아니라고. 빵은 알수록 쉬워지지 않았다처음엔하나라도 더 빨리 익히고 싶었다.반죽법, 온도, 시간, 레시피.공식처럼 외우면어느 순간 다 될 줄 알았다.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빵은 오히려 더 어렵게 다가왔다.같은 밀가루, 같은 물, 같은 손인데날마다 결과가 달랐고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틀리기도 했다.그때 알게 됐다.빵은 외우는 게 아니라계속 묻는 일이라는 걸. 배움은 기술보다 태도를 바꿨다 수업을 들을수록손기술보다 먼저 바뀐 건마음가짐이었다.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법,실패를 바로 버리지 않는 법,빵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배움은나를 더 잘 굽게 만들기보다더 천천히 만들었다.그리고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