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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이야기

설탕은 단맛만 내는 게 아니더라고요 - 보습·발효·색·식감의 비밀 빵에 들어가는 설탕,단맛 조절 그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오랫동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식빵 레시피에 설탕 20g이 있으면"조금 덜 달게 만들어볼까" 싶어서 그냥 반으로 줄여본 적이 있어요. 결과는 완전히 다른 빵이었어요.색은 옅고, 발효는 뜬금없이 늦어졌고,크럼은 예전 같은 부드러움이 없었어요.같은 밀가루, 같은 이스트, 같은 시간인데설탕 하나 줄인 것뿐인데 빵의 인상 전체가 달라졌어요. 그날 알았어요.설탕은 그냥 단맛이 아니라 빵의 여러 얼굴을 만드는 재료라는 걸. R&D에서는 설탕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로 봐요. 1. 단맛 (물론)이건 가장 눈에 보이는 역할이에요.빵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밀가루 대비 2~10% 정도 설탕을 넣어요.식빵: 2~5%단과자빵: 8~12%브리오슈: 10~15%이.. 더보기
밀가루 등급 T55·T65 뭐가 다를까 - 프랑스식 밀가루의 진짜 이야기 바게트 레시피를 보다 보면가끔 이런 표현이 나와요. "T55 밀가루 500g" "T65와 T80을 80:20으로 섞어서" 이 T 숫자가 도대체 뭔지 궁금하셨던 적 있으신가요?저도 처음 프랑스 레시피를 접했을 때 이 부분에서 한참 헤맸어요.한국에서 파는 밀가루는 강력분·중력분·박력분 이렇게 나뉘어 있잖아요. "T55는 강력분인가, 중력분인가?"이 질문의 답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더라고요. 먼저 T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부터.프랑스에서는 밀가루 등급을 회분 함량으로 나눠요.밀가루를 태우고 남은 재의 양을 회분(灰分, ash) 이라고 하는데이게 밀알의 껍질(밀기울)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예요. T 뒤의 숫자 = 회분 함량 × 100 즉, T55 = 회분 0.55%, T65 = 회분 0.65%, T.. 더보기
달걀의 무게 - 같은 한 개인데 왜 다 다를까 레시피에 이렇게 적혀 있는 걸 자주 보시죠? "달걀 1개" 너무 익숙한 표현이라저도 오랫동안 아무 의심 없이 썼어요. 근데 어느 날부터 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이하루는 촉촉하고 하루는 뻣뻣해지는 일이 반복됐어요.밀가루도 같고,버터도 같고,심지어 오븐 온도까지 똑같이 잡았는데 결과가 자꾸 흔들렸어요. 원인을 못 찾고 헤매다가 한 선배가 무심하게 물었어요. "달걀은 그램으로 재?" 그날 처음 알았어요.달걀 한 개의 무게가 사이즈별로 20% 이상 차이 난다는 걸. 한국에서 유통되는 달걀은 등급이 이렇게 나뉘어 있어요.왕란: 68g 이상특란: 60~68g대란: 52~60g중란: 44~52g소란: 44g 미만"달걀 1개"라고만 적힌 레시피는 사실 정말 애매한 표현이었어요. 특란과 소란은 무게가 15g 넘게 차이 나.. 더보기
우유의 자리 - 물 대신 우유를 쓴다는 것 빵을 만들 때우유 대신 물을 써도 되나요?또는 반대로, 물 대신 우유를 쓰면 뭐가 달라질까요. 한 번쯤 궁금하셨던 적 있으신가요?저도 오랫동안 그랬어요."물이나 우유나 그냥 액체잖아."그렇게 생각했어요. R&D 시절 평소 식빵 레시피의 물을 우유로 바꿔본 적이 있어요.같은 밀가루,같은 이스트,같은 소금,같은 온도. 물만 우유로 바꿨을 뿐인데오븐에서 나온 빵이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았어요.색이 훨씬 노릇했고, 향이 은은하게 달았고,잘랐을 때 크럼이 손에 감기는 부드러움이었어요.한 입 먹었을 때 "이게 뭐지" 했어요. 그날 알았어요.우유는 그냥 액체가 아니라 빵의 인상을 바꾸는 재료라는 걸. R&D에서는 우유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로 봐요. 1. 풍미우유 안의 유당은 빵에 은은한 단맛을 남겨요.유지방은 .. 더보기
소금의 자리 - 1%가 빵 맛을 바꾼다는 걸 처음 안 날 빵에 들어가는 소금,그냥 짠맛 내는 거 아니에요?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어요.밀가루 1kg에 소금 20g.이 비율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20g이면 너무 짜지 않나?"R&D 시절, 저는 그날 한 가지 실수를 했어요.소금을 10g만 넣어본 거예요. 겉으로 봐서는 별 차이가 없었어요.반죽도 잘 만들어졌고,발효도 평소처럼 됐고,오븐에서 나온 빵의 색도 비슷했어요. 근데 한 입 먹는 순간 이상한 게 느껴졌어요.밍밍하다는 느낌이 아니었어요.뭔가 풍미 자체가 빠져 있었어요. 빵에서 나오던 그 깊은 향, 씹을수록 올라오던 단맛, 밀가루 본연의 고소함.그게 다 흐려져 있었어요. 같이 일하던 선배가 한 입 먹어보더니 말했어요."소금 줄였지?"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어요. "소금은 짠.. 더보기
버터의 두 얼굴 - 처음으로 발효 버터를 만난 날 빵에 들어가는 버터,그냥 다 비슷한 줄 알았어요.가염, 무염 정도만 구분했지 다른 종류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R&D 시절, 한 선배가 작은 버터 한 조각을 입에 넣어줬어요. "이거랑 평소 쓰는 거랑 비교해봐." 먼저 평소 쓰던 버터를 한 입.부드럽고, 고소하고, 익숙한 맛.그 다음에 그 작은 조각을 한 입. 향이 완전히 달랐어요. 고소한데 살짝 새콤하고,요거트 같은 깊은 향이 입 안에 오래 남아 있었어요."이게 같은 버터예요?"선배가 웃으면서 말했어요."그게 발효 버터야." 그날 처음 알았어요.버터에도 발효 라는 게 있다는 걸.발효 버터는 우유에 유산균을 넣고 발효시킨 다음 만든 버터예요. 영어로는 컬처드 버터 (Cultured butter) 또는 유럽식 버터라고도 해요.발효 과정에서 유산이 만들어지면.. 더보기
물의 무게 - 같은 레시피인데 다른 빵이 나오던 이유 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인데왜 어떤 날은 다르게 나올까. 오랫동안 답을 못 찾았어요. 밀가루도 같고,이스트도 같고,계량도 정확했는데빵의 풍미는 미묘하게 달랐어요.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건 물이었어요. R&D 시절,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어요. "빵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물이 제일 많은 거 알지?"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어요.반죽 무게의 60~70%가 물이거든요.근데 저는 그 물을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수돗물이든,정수기 물이든,페트병 물이든"같은 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선배가 작은 실험을 보여줬어요.같은 레시피 세 개를 만들고 물만 다르게 했어요.하나는 수돗물하나는 정수기 물하나는 미네랄워터같은 시간, 같은 온도에서발효했는데 빵이 다 달랐어요. 수돗물로 만든 건 색이 옅고,정수기 물로.. 더보기
이스트 한 봉지의 무게 - 효모를 죽이지 않고 살려 쓴다는 것 처음 빵을 만들 때저는 이스트를 죽인 적이 있어요. 뜨거운 물에 풀었거든요. "발효를 빨리 시키려면따뜻한 물이 좋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한참을 기다려도반죽이 안 부풀더라고요. 세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이스트가 다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이스트 봉지를 처음 받아보면 정말 작아요. 500g 밀가루에 들어가는 양이 겨우 5g 이에요. 근데 그 5g이빵 한 덩이 전체를부풀게 해요. 그 작은 가루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이스트는 효모예요. 학명은 Saccharomyces cerevisiae. 밀가루 안의 당분을 먹고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들어요. 이산화탄소가 반죽을 부풀게 하고알코올이 풍미를 만들어요. 근데 이 효모는 살아있는 미생물이에요. 40도가 넘으면 약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