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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브레드

발효의 향기를 처음 맡던 날 - 빵이 살아난다는 것의 의미 처음 반죽을 만들어 놓고기다리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밀가루와 물,소금, 그리고 작은 발효종을 섞어 놓고덮개를 덮었을 때는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없었어요. 그저‘과연 이게 빵이 될까?’하는 의문뿐이었죠.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 덮개를 살짝 걷는 순간,작은 기적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차분히 잠들어 있던 반죽이서서히 숨을 쉬고 있었어요. 작은 기포들이 보글보글 올라와 표면을 간질이고,손끝으로 만져보니이전보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 순간,반죽이 단순한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라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발효에서 나는 향은 참 묘합니다.처음에는 새콤하고 낯선 냄새에 고개를 갸웃했지만,곧 고소한 곡물 냄새와 어우러지며마치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게 다.. 더보기
밀가루 한 줌 속에 담긴 세상 빵을 배우고 만들면서가장 자주 만나는 재료는단연 밀가루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그저 흰 가루, 반죽을 만드는 기본 재료 정도로만 여겼습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은 한 줌의 밀가루가얼마나 큰 세상을 품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밀가루는 단순히 빵의 ‘재료’가 아니라,빵의 성격을 결정하는 뿌리와도 같습니다.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단어는 단순하지만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빵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바게트의 바삭함,브리오슈의 부드러움,쿠키의 바스러짐까지모두 밀가루에서 시작됩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단백질 함량, 글루텐 형성력, 제분 방식이각각의 맛과 식감을 만들어 내지요. 어느 날 수업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밀가루를 알면 빵을 반쯤은 이해한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한 줌의 .. 더보기
버터, 빵을 춤추게 하는 재료 - 풍미와 질감을 만드는 힘 빵을 만들 때마다늘 놀라는 재료가 있습니다.바로 버터입니다. 소금처럼 소량만 들어가도전체 맛을 좌우하는 재료가 있는가 하면,버터는 존재 자체가빵의 개성을 바꿔놓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갓 구운 크루아상을 떠올려보면,바삭하게 부서지는 결 사이로흘러나오는 은은한 버터 향이가장 먼저 다가옵니다.그 향은 단순한 맛을 넘어,먹는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식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버터가 들어간 식빵은부드럽고 촉촉한 질감을 가지며,시간이 지나도 쉽게 푸석해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차이가,버터가 빵 속에서 맡고 있는 특별한 역할을 보여줍니다.버터는단순히 기름진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빵의 질감을 조율하고 풍미를 입히는 지휘자와 같습니다. 버터가 충분히 들어간 반죽은부드럽게 늘어지고,오븐 속에서 구워지.. 더보기
연남동에서 배운 크로와상의 태도 - 크로와상랩 방문기 며칠 전,연남동의 크로와상랩을다녀왔습니다. 이름처럼‘연구소’라는 단어가 붙은 곳이라,그들의 빵은단순한 판매용 제품이 아니라오랜 시간 실험하고다듬은 결과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풍기는 버터 향, 바삭하게 겹겹이 쌓인 결, 그리고 진열대 위에서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는 크로와상들. 그 순간 저는 “아, 이곳은 단순히 빵을 굽는 곳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맛본 것은기본 크로와상이었지만,그 속에 담긴 건단순한 ‘버터와 밀가루의 조합’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균형’이었습니다.버터의 고소함이 과하지 않게,결의 바삭함과 속의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맛.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연습과 연구의 결과물일 겁니다. 담다브레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이.. 더보기
빵을 배우는 길,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처음빵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저는 늘 마음이 급했습니다. ‘빵을 빨리 잘 만들어야지.’‘사람들에게 금방 보여줄 수 있어야지.’ 이런 생각으로반죽을 서두르고,발효 시간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결과는 언제나 부족했지요.덜 익은 속살,금세 굳어버리는 식감,무너져버린 모양새. 결국,조급했던 마음이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빵은 네 속도를 따라가지 않아. 네가 빵의 속도를 따라가야지.” 그 한마디가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빵을 배우는 길은누구와 경쟁할 필요가 없는 길입니다.누군가는 빠르게 새로운 레시피를 익히고,멋진 모양의 빵을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저에게는 제가 걷는 속도가 있습니다.반죽을 느끼는손끝의 감각, 발효를 기다리며배워가는.. 더보기
빵을 굽는 건 결국 나를 굽는 일 빵을 굽다 보면,늘 같은 레시피와 같은 손길을 따라가는데도결과는 매번 조금씩 다릅니다.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나 발효종은 같은데,오늘의 반죽은어제의 반죽과 똑같지 않습니다. 날씨의 습도, 손끝의 힘, 기다림의 시간,그리고 제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끔은‘조금만 더 기다리면 반죽이 더 부풀 거야’라는 생각에 욕심을 내지만,결국 무너져버린 모습을 보며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서두르다 덜 익은 속살을 마주하면,조급했던 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듯 부끄러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깨닫습니다. 빵을 굽는 과정은단순히 제빵 기술이 아니라,지금의 나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다는 것을요. 빵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반죽은 제가 쏟아낸인내와 마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가.. 더보기
시간이 만든 맛 빵을 굽다 보면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빵은 시간과의 대화다.” 짧게는 몇 시간,길게는 하루가 넘는발효 과정을 거치며밀가루와 물, 소금, 발효종은 서로 어울리고 섞이며새로운 맛을 만들어냅니다.그 안에는 급하게는결코 얻을 수 없는 풍미가 숨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그 말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은 바쁘다는 이유로,발효 시간을 조금 줄여서빵을 구운 적이 있습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했지만,막상 잘라보니속이 덜 익은 듯 촉촉했고맛 또한 깊이가 부족했습니다. 반대로,한 번은 반죽을 발효통에 넣은 채로 깜빡 잊고긴 시간을 보내버린 적도 있습니다.‘망했다’ 싶었는데,놀랍게도그 빵은 예상치 못한 향과 풍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기다림이 만든 차이가고스란히 맛에 담긴 순간이었죠. 특히천연 발효종을 사용.. 더보기
도구 욕심과 현실 차이 빵을 배우기 시작하면누구나 한 번쯤‘도구 욕심’이라는벽에 부딪힙니다. 처음에는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만 있으면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유튜브 영상 속 반짝이는반죽기와 전문 제빵사들의 손에 들린 도구들이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저 도구만 있으면 나도 저렇게 멋진 빵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는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반죽기 하나로 시작해보려다,어느새 계량저울을 0.1g 단위까지 잴 수 있는정밀한 제품으로 바꾸고,다양한 크기의 발효 바구니와 스크래퍼, 쿠키 틀, 온도계까지… 작은 주방 한쪽이 도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그 많은 도구 중 실제로 손이 가는 건몇 가지뿐이었습니다. 빵을 배우면서 깨달은 건,도구는 어디까지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