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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브레드

보인다는 것— 숫자가 쌓이면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처음으로 숫자가 맞아떨어졌던 날, 저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어요. 빵 하나하나의 원가가 제대로 나온 거예요. 재료값, 포장재, 폐기율까지 반영된 실제 원가. 그동안 감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숫자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소금빵이었어요. 가장 많이 팔리는 빵이라 당연히 가장 남는 빵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원가를 보니 생각보다 마진이 얇았어요. 반죽에 들어가는 버터 양, 발효 시간이 긴 만큼 드는 가스비, 하루에 여러 번 굽는 횟수. 그걸 다 더하고 나니 남는 금액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 적었어요. 반대로 의외의 빵도 있었어요. 별로 팔리지 않아서 사실 없애려고 했던 빵인데, 원가가 낮고 가격 대비 마진이 좋은 편이었어요. "이게 사실 더 남는 빵이었네." 그 한 줄을 보는데 .. 더보기
틀린다는 것 – 원가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며 계속 틀렸던 이야기 처음엔 다 틀렸어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항목을 나열하는 거였어요. 밀가루, 버터, 계란, 설탕. 포장재, 전기세, 가스비. 여기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막상 계산식을 만들려고 하니 이상한 부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재료 단가를 1kg 기준으로 넣었더니 50g을 쓸 때 숫자가 안 맞았어요. 단위를 바꿨더니 이번엔 다른 항목이 어긋났어요.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틀렸어요. 이틀을 꼬박 거기서 막혔어요. 계산기를 두드리고, 숫자를 고치고, 다시 처음부터 짜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빵도 처음엔 이랬지. 반죽 비율을 처음 맞출 때 수분이 많아서 질척거리거나, 반대로 너무 딱딱하거나. 발효가 덜 됐거나, 너무 됐거나. 오븐 온도가 높아서 겉만 타거나. 처음부터 완.. 더보기
정의한다는 것 - 원가가 뭔지부터 정해야 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막힌 건 코드가 아니었어요. 원가를 입력하는 칸을 만들려고 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원가가 뭐지?재료값이요? 맞아요, 그건 분명하죠. 그럼 포장재는요? 그것도 원가죠. 전기세는요? 음… 들어가긴 하는데. 한 달 전기세를 빵 수량으로 나누면 되는 건가요? 가스비는요? 오늘 오븐을 몇 시간 켰는지 어떻게 계산하죠? 그럼 오늘 실패한 반죽은요? 버린 밀가루값은요? 팔리지 않아서 폐기한 빵들은요? 그리고, 제 시간은요? 빵 한 개를 만드는 데 제가 쓰는 시간. 반죽하고, 발효를 기다리고, 성형하고, 오븐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그게 원가에 들어가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넣으면 가격이 너무 높아질 것 같고, 빼면 제 노동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 같고. 어.. 더보기
반복한다는 것 - 같은 계산을 매번 처음부터 하던 시절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전에 계산한 것 같은데, 노트를 뒤져봐도 그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것. 그래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는 것. 저는 그런 날이 꽤 많았어요. 소금빵 원가를 계산했던 날, 크림치즈 단팥빵 원가를 계산했던 날. 분명히 계산했는데, 그 결과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노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거나, 아예 기억에만 남아있거나. 그래서 또 처음부터 했어요. 계산기를 꺼내고, 밀가루 가격을 확인하고, 무게를 달고, 비율을 계산하고. 지난번이랑 똑같은 과정을 또 다시, 처음부터. 처음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매번 재료 가격도 다르고, 배합도 조금씩 달라지니까. 다시 계산하는 게 오히려 정확한 거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료 가격만.. 더보기
원가를 손으로 계산한다는 것 - 숫자보다 손끝을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 빵을 처음 팔기 시작했을 때, 나는 노트 한 권을 샀습니다.격자 칸이 있는 그 노트에 밀가루의 무게를 적고, 버터 가격을 적고, 가스비를 나누고, 인건비를 얹었지요. 계산기를 옆에 두고, 지우개를 자주 썼다지웠다 하기도 했답니다.틀리면 지우고, 다시 적고, 또 틀리면 다시 지웠습니다. 그렇게 한 페이지를 완성하면 그 숫자를 한 번 바라보다가, 대부분 그냥 덮어두기만 했답니다.노트는 점점 두꺼워졌지만, 나는 여전히 계산보다 손끝을 믿었기 때문인것 같아요.사실 내가 믿은 건 계산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 빵이 이 가격이면 팔릴 것 같다는 감각. 저 빵은 조금 더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 그 감각이 먼저였고, 노트의 숫자는 나중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거죠. "원가 계산보다 손이 먼저야." .. 더보기
편리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 일부러 불편함을 남겨두는 이유 요즘은 많은 것들이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일들,몇 번의 클릭으로 완성되는 과정들. 예전에는 시간이 필요했던 일들이이제는 거의 기다림 없이빠르게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기술은끊임없이 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더 빠르게,더 쉽게,더 효율적으로. 이 흐름은 분명좋은 변화입니다.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주고,더 많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니까요.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편리해지는 것이정말 더 나은 방향일까. 특히"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빵을 만드는 과정에는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반죽을 하고,기다리고,발효를 거치고,다시 손을 거칩니다. 이 과정은줄이려고 하면얼마든지 줄일 수 있습니다.기계를 사용.. 더보기
기준을 만든다는 것 - 정답이 많아질수록 더 어려워지는 선택 요즘은 무엇이든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검색을 하면 수많은 정보가 나오고,AI는 그 안에서정리된 형태의 답을 빠르게 보여줍니다. 어떤 재료가 좋은지,어떤 방법이 더 효율적인지,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지. 이제는 하나의 질문에 대해여러 개의 정답처럼 보이는 선택지를동시에 마주하게 됩니다.이런 상황 속에서한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정답이 많아질수록선택은 더 쉬워지는 걸까. 처음에는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정보가 많고,답이 정리되어 있고,비교할 수 있는 기준들이 많아지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오히려 더 망설이게 되고,어떤 것이 더 맞는지쉽게 결정하기 어려워집니다. 비슷해 보이는 선택들 사이에서계속 비교하게 되고,결국에는결정.. 더보기
더 빠르게 만드는 시대에서, 천천히 만든다는 것 - 효율보다 시간을 선택하는 이유 요즘은 무엇이든빠르게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고,특히 AI는 많은 일들을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줄어들고,무언가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시간을 줄이는 것’은곧 좋은 선택처럼 느껴집니다.빠르게 만들고,빠르게 보여주고,빠르게 결과를 얻는 것.그 방식은 분명 효율적이고,지금의 시대와도 잘 맞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이런 생각이 함께 떠오릅니다.모든 것을그렇게까지 빠르게 만들어야 할까. 빵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반죽을 하고,발효를 기다리고,오븐에서 구워내는 시간.이 과정들은본래부터 빠르게 줄이기 어려운 시간들이지만,기술을 활용하면어느 정도는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