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물 무렵,
주방 안은 고요해집니다.
한동안 울리던 반죽기 소리도 멎고,
따뜻한 오븐 불빛만이 벽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모든 일이 잠시 멈춘 그 시간,
저는 다시 빵을 굽습니다.
누군가는 아침을 위해 굽고,
저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굽습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죠.
아침의 빵이 활기와 시작을 위한 것이라면,
밤의 빵은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하루 종일 손을 움직였던 그 손으로
마지막 반죽을 다듬으며 생각합니다.
“오늘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빵을 만들었을까.”
빵이 익어가는 냄새 속에는,
기쁨도, 피로도, 작은 후회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 냄새가 퍼질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금씩 풀립니다.
누군가를 위해 굽는 빵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 자신을 위해 굽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굳이 지금 이 시간에 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반죽을 손에 올리면,
그 생각은 금세 사라집니다.
반죽의 온기와 밀가루 향,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숨결이
오늘 하루의 피로를 천천히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빵은 그저 음식이 아니라,
제게는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누군가는 일기를 쓰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듯,
저는 오븐 앞에서 마음을 녹입니다.
다 구워진 빵을 꺼내 식힘망 위에 올려놓습니다.
바삭한 껍질이 ‘톡’ 하고 터지는 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하루가 괜찮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불빛이 점점 잦아들고,
주방 안에는 구수한 향과 잔잔한 온기만 남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다시 내일을 준비합니다.
빵은 오늘의 끝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다리이니까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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