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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팔던 시절 - 어떤 빵이 잘 팔리는지, 기록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들 오늘 뭘 얼마나 구울지 어떻게 결정하세요? 저는 오랫동안 그냥 감으로 결정했어요. 어제 많이 팔렸으니까 오늘도 많이 굽고, 날씨가 좋으면 손님이 많을 것 같으니까 늘리고, 주말이니까 조금 더 넉넉하게. 그 감이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몇 년을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상황이 생겼어요. 소금빵이 다 팔렸어요. 손님이 찾는데 없는 거예요. "오늘은 일찍 다 나갔네." 하고 넘겼어요. 그 다음 날은 반대로 소금빵이 남았어요. 평소보다 많이 구웠는데 저녁까지 몇 개가 남아있었어요. 그 다음 주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어요. 어떤 날은 부족하고, 어떤 날은 남고.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감으로는 설명이 안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정말로 어떤 빵이 얼마나 팔.. 더보기
베이커 퍼센트를 처음 알게 된 날 - 레시피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제빵 학원에서 처음 배웠어요. 칠판에 이런 수식이 적혔어요. 재료 무게 ÷ 밀가루 무게 × 100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어요. "밀가루를 항상 100%로 놓고, 나머지 재료의 비율을 밀가루 기준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이런 게 있구나. 신기하네.' 그리고는 그냥 넘어갔어요. 시험에 나오면 외우면 되겠다, 하는 생각으로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 그때는 몰랐어요.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다 그랬거든요. 열심히 배우고, 실습하고, 졸업하고. 그런데 막상 직접 빵을 팔기 시작하니까 배운 것들이 하나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베이커 퍼센트가 진짜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어요. 레시피대로 소금빵을 20개 만들었는데 다음 날 40개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때 .. 더보기
빵집 도구함을 여는 이유 - 베이커리 운영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 베이커리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있어요. "이거, 더 쉽게 할 수 없을까?" 원가를 계산할 때, 레시피 배합을 확인할 때, 오늘 얼마나 팔렸는지 정리할 때. 매번 노트를 꺼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틀리면 지우고 다시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빵 굽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왜 이 계산들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처음엔 원가 계산부터 시작했어요. 밀가루, 버터, 달걀. 포장재에 전기세까지. 노트 한 페이지가 빽빽하게 채워지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그걸 매번 반복했고, 매번 조금씩 틀렸어요. 그 다음엔 베이커 퍼센트가 문제였어요. 레시피를 바꿀 때마다 수분량, 소금 비율을 다시 계산해야 했거든요. 그리고 폐기율. 매일 버려지는 빵들을 그냥 지나쳤던 시절이 있었어요. .. 더보기
공유한다는 것 - 혼자 쓰던 것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사실 처음부터 공유할 생각은 없었어요. 나만 쓰면 되는 거니까. 내 가게 빵의 원가를 내가 빠르게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지인 베이커리 운영자분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나도 원가 계산이 제일 막막해. 매번 엑셀 켜는 것도 귀찮고, 공식도 자꾸 틀리고." 그 말을 듣는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손으로 계산하는 게 번거롭고, 매번 처음부터 하는 게 비효율적이고, 항목을 어디까지 넣어야 할지 기준이 없어서 막막한 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예요.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만든 것이 나한테만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더보기
보인다는 것— 숫자가 쌓이면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처음으로 숫자가 맞아떨어졌던 날, 저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어요. 빵 하나하나의 원가가 제대로 나온 거예요. 재료값, 포장재, 폐기율까지 반영된 실제 원가. 그동안 감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숫자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확인한 건 소금빵이었어요. 가장 많이 팔리는 빵이라 당연히 가장 남는 빵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원가를 보니 생각보다 마진이 얇았어요. 반죽에 들어가는 버터 양, 발효 시간이 긴 만큼 드는 가스비, 하루에 여러 번 굽는 횟수. 그걸 다 더하고 나니 남는 금액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 적었어요. 반대로 의외의 빵도 있었어요. 별로 팔리지 않아서 사실 없애려고 했던 빵인데, 원가가 낮고 가격 대비 마진이 좋은 편이었어요. "이게 사실 더 남는 빵이었네." 그 한 줄을 보는데 .. 더보기
틀린다는 것 – 원가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며 계속 틀렸던 이야기 처음엔 다 틀렸어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항목을 나열하는 거였어요. 밀가루, 버터, 계란, 설탕. 포장재, 전기세, 가스비. 여기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막상 계산식을 만들려고 하니 이상한 부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재료 단가를 1kg 기준으로 넣었더니 50g을 쓸 때 숫자가 안 맞았어요. 단위를 바꿨더니 이번엔 다른 항목이 어긋났어요.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틀렸어요. 이틀을 꼬박 거기서 막혔어요. 계산기를 두드리고, 숫자를 고치고, 다시 처음부터 짜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빵도 처음엔 이랬지. 반죽 비율을 처음 맞출 때 수분이 많아서 질척거리거나, 반대로 너무 딱딱하거나. 발효가 덜 됐거나, 너무 됐거나. 오븐 온도가 높아서 겉만 타거나. 처음부터 완.. 더보기
정의한다는 것 - 원가가 뭔지부터 정해야 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막힌 건 코드가 아니었어요. 원가를 입력하는 칸을 만들려고 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원가가 뭐지?재료값이요? 맞아요, 그건 분명하죠. 그럼 포장재는요? 그것도 원가죠. 전기세는요? 음… 들어가긴 하는데. 한 달 전기세를 빵 수량으로 나누면 되는 건가요? 가스비는요? 오늘 오븐을 몇 시간 켰는지 어떻게 계산하죠? 그럼 오늘 실패한 반죽은요? 버린 밀가루값은요? 팔리지 않아서 폐기한 빵들은요? 그리고, 제 시간은요? 빵 한 개를 만드는 데 제가 쓰는 시간. 반죽하고, 발효를 기다리고, 성형하고, 오븐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그게 원가에 들어가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넣으면 가격이 너무 높아질 것 같고, 빼면 제 노동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 같고. 어.. 더보기
반복한다는 것 - 같은 계산을 매번 처음부터 하던 시절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전에 계산한 것 같은데, 노트를 뒤져봐도 그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것. 그래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는 것. 저는 그런 날이 꽤 많았어요. 소금빵 원가를 계산했던 날, 크림치즈 단팥빵 원가를 계산했던 날. 분명히 계산했는데, 그 결과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노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거나, 아예 기억에만 남아있거나. 그래서 또 처음부터 했어요. 계산기를 꺼내고, 밀가루 가격을 확인하고, 무게를 달고, 비율을 계산하고. 지난번이랑 똑같은 과정을 또 다시, 처음부터. 처음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매번 재료 가격도 다르고, 배합도 조금씩 달라지니까. 다시 계산하는 게 오히려 정확한 거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료 가격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