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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순간들

빵을 계속 배우는 이유 -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다짐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이 정도면 이제 혼자 해도 되지 않나요?”그럴 때마다잠깐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하게 됀다.아직은 아니라고. 빵은 알수록 쉬워지지 않았다처음엔하나라도 더 빨리 익히고 싶었다.반죽법, 온도, 시간, 레시피.공식처럼 외우면어느 순간 다 될 줄 알았다.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빵은 오히려 더 어렵게 다가왔다.같은 밀가루, 같은 물, 같은 손인데날마다 결과가 달랐고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틀리기도 했다.그때 알게 됐다.빵은 외우는 게 아니라계속 묻는 일이라는 걸. 배움은 기술보다 태도를 바꿨다 수업을 들을수록손기술보다 먼저 바뀐 건마음가짐이었다.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법,실패를 바로 버리지 않는 법,빵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배움은나를 더 잘 굽게 만들기보다더 천천히 만들었다.그리고 그.. 더보기
한 덩이의 반죽이 만들어준 관계 - 사람과의 연결 빵을 만든다는 건,언뜻 보면 밀가루와 물, 이스트의 과학 같지만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걸 더 느낍니다. 한 덩이의 반죽은 언제나 제게 ‘관계’를 가르쳐줍니다.처음 만졌을 때의 서툴던 손끝,함께 반죽을 나누던 동료의 웃음소리,그리고 그 빵을 받아 든 사람의 따뜻한 표정까지~모두가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처음 제빵을 배우던 시절,저는 오로지 ‘빵을 잘 만드는 법’에만 집중했습니다.온도, 시간, 발효율, 굽기…그런데 어느 날함께 수업을 듣던 한 친구가 제게 이렇게 말했죠.“빵은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나누는 거야.”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반죽은 혼자서 만들 수 있지만,빵은 결국 누군가에게 건네져야 완성됩니다.함께 구운 빵을 나누던 날의 공기,서로의 노하우를 알려주.. 더보기
올리브 치아바타 실험 후기 - 실패 같았던 하루가 알려준 것들 며칠 전,새로운 빵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이름하여 ‘올리브 치아바타’.겉은 거칠지만 속은 부드럽고,짭조름한 올리브가 입안 가득 풍미를 남기는 그빵을 떠올리면 늘 마음이 설렜습니다.하지만 막상 만들어보니,생각보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어요. 첫 번째 시도는지나치게 수분이 많았습니다.치아바타 특유의 촉촉함을 살리고 싶어욕심을 부린 탓이었죠.반죽은 손에 찰싹 달라붙고,아무리 접어도 모양이 잡히지 않았습니다.결국 오븐 안에서납작하게 퍼져버린 반죽을 꺼내며 혼자 웃었습니다.‘그래, 오늘은 이 정도면 된 거야.’ 다음 날은 물의 비율을 조금 줄이고,올리브의 염도도 다시 조절했습니다.발효 도중 반죽이 서서히 살아나는 걸 보며“아, 어제의 실패가 헛되지 않았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올리브 치아바타의 묘미는.. 더보기
“하루의 끝에 굽는 빵” - 고요한 시간의 위로 하루가 저물 무렵,주방 안은 고요해집니다.한동안 울리던 반죽기 소리도 멎고,따뜻한 오븐 불빛만이 벽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모든 일이 잠시 멈춘 그 시간,저는 다시 빵을 굽습니다. 누군가는 아침을 위해 굽고,저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굽습니다.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죠.아침의 빵이 활기와 시작을 위한 것이라면,밤의 빵은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하루 종일 손을 움직였던 그 손으로마지막 반죽을 다듬으며 생각합니다.“오늘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빵을 만들었을까.”빵이 익어가는 냄새 속에는,기쁨도, 피로도, 작은 후회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 냄새가 퍼질 때마다마음 한쪽이 조금씩 풀립니다.누군가를 위해 굽는 빵이지만,그 순간만큼은 제 자신을 위해 굽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을 했습.. 더보기
“쉬어가는 시간도 반죽의 일부다” - 멈춤이 주는 힘 반죽을 하다 보면,어느 순간 손이 멈춘다.처음에는단지 팔이 아파서 쉬는 줄 알았다.하지만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그 멈춤의 시간,바로 그때 빵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는 것을.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쉬어가기’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치대고, 당기고, 접어 올리며 긴장했던 반죽 속에온기가 스며들고,밀가루와 물, 소금, 효모가서로를 알아가는 순간이기도 하다.사람의 손이 멈추면,반죽은 스스로의 리듬으로 움직인다.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반죽은 자신만의 결을 만들고, 또 단단해진다. 이 시간을 무시하고 서두르면,겉은 그럴듯해도속은 허무한 빵이 된다.빵뿐만 아니라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쉬어야 다시 단단해지고,잠시 멈춰야 다음 걸음을 내디딜 힘이 생긴다. 나는 오븐 옆에서 그 사실을 자주 떠올린다.열기와 소음 속에서도 .. 더보기
“가을, 발효가 더 깊어지는 계절” - 온도와 시간의 대화 가을이 오면공기가 달라진다.여름의 습하고급한 열기가 잦아들고,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스며든다.이때부터 빵 반죽은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온도가 낮아지고,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면서발효는 비로소 ‘대화’가 되는 계절이 된다. 여름엔 온도계를 자주 들여다보며발효의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조금만 방심해도 반죽은 숨이 차서 제멋대로 부풀었다. 하지만가을엔 반죽이 한결 느긋하다.천천히,그러나 확실하게 부풀어 오르며‘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나는 그 모습을 보며,빵이 아니라시간 그 자체를 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발효는기다림의 예술이다. 그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길 바라며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로 느끼며조용히 반죽과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 더보기
빵 위에 남겨진 손길 -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빵을 굽다 보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오븐에서 막 나온 빵을 바라볼 때가 아닙니다.저에게 진짜 특별한 순간은그 빵에 손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입니다. 빵은 기계가 찍어내는 모양이 아닙니다.반죽을 접고, 모양을 잡고, 칼집을 내는 과정마다 사람의 호흡이 들어갑니다.칼집 하나의 깊이, 손끝의 힘, 반죽을 다루는 속도까지~그 모든 차이가 결국 빵 위에 흔적으로 남습니다.그래서 같은 레시피라도,같은 오븐이라도,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의 빵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바게트를 구웠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조심스럽게 칼집을 내며 “제발 잘 터져라” 하고 기도하던 마음,그 떨림이 그대로 빵 위의 결로 남았습니다.그리고 그 빵을 건네받은 누군가가 “따뜻하다”라고 말해주었을 때,단순한 맛 이.. 더보기
빵집에서 흐르는 시간 - 오븐의 불빛과 하루의 리듬 빵집의 하루는시계와는 조금 다른 리듬으로 흘러갑니다.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가장 먼저 불이 켜지는 곳은 오븐입니다.따스한 불빛이 고요한 공간을 비추고,아직 잠든 마을 속에서 작은 불씨처럼 하루가 시작되지요. 이른 시간의 빵집은마치 또 다른 세상 같습니다.막 반죽을 마친 빵들이 줄지어 대기하고,숙성된 반죽은 차분히 오븐 속으로 들어갑니다.그 순간,이곳의 공기는 달라집니다.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퍼져 나가는 고소한 향,‘곧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은 빵집 안에서 독특하게 흐릅니다.한쪽에서는 발효가 천천히 진행되고,다른 쪽에서는 오븐의 열기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어느 하나 서두를 수 없고, 또 늦출 수도 없는 흐름.이 미묘한 균형 속에서 하루의 리듬이 만들어집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