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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순간들

오븐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 굽기가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는 순간 저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해요.25분. 이 시간 동안 오븐 안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벌어져요.저는 그 앞에 조용히 서서 오븐 창을 들여다보곤 해요.가끔 이 시간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 3분 반죽이 급격히 부풀어요.이걸 오븐 스프링 이라고 해요. 오븐 열이 반죽 안으로 스며들면서안의 공기와 이스트가 만든 가스가 한꺼번에 팽창해요.이 3분이 사실 굽기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에요.반죽 표면은 아직 부드러운데안에서 밀어올리는 힘이 빵의 최종 볼륨을 결정해요. 5~7분 표면이 서서히 마르기 시작해요.수분이 증발하면서 크러스트가 형성돼요. 이때 오븐 문을 열면 안 돼요.찬 공기가 들어가는 순간 반죽이 놀라서 주저앉거든요.오븐 창으로만 조용히 보는 게 규칙이에요.. 더보기
8월 여름, 새벽 4시의 주방 - 폭염 속에서도 빵을 굽는 이유 낮에는 35도가 넘어가는 8월 한여름.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5분도 서 있기 힘든 계절이에요.이런 날씨에 왜 굳이 빵을 굽나 싶으실 수도 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이 더위에 오븐까지 켜야 하나."그런데도 새벽 4시가 되면 저는 어김없이 주방에 서 있어요. 새벽 4시의 주방은 낮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에요.밖은 아직 어둡고, 공기는 시원해요.에어컨 없이도 실온이 25도 정도로 유지돼요. 이 시간에 반죽을 시작하면 발효가 안정적으로 진행돼요.여름 반죽에게는 새벽이 최고의 친구예요. 물이 시원해요.수돗물이 낮보다 3~4도 낮게 나와요.밀가루도 밤새 시원해진 상태고 버터도 딱 좋은 온도에 있어요. 이 모든 재료가 낮에는 30도 넘게 데워져 있어요.같은 재료인데도 새벽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예요. 밖에서 새.. 더보기
르방을 살리는 일 - 매일 반복하는 작은 의식 매일 아침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주방에 들어가서 유리병 하나를 확인하는 일. 그 안에는 르방이 살고 있어요.밀가루와 물로만 키워낸 자가효모. 거품이 얼마나 올라와 있는지,표면이 어떻게 변했는지,새콤한 향이 나는지.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해요. 처음 르방을 만들었던 날을 지금도 기억해요.호밀가루 30g에 물 30g을 섞고 따뜻한 곳에 두었어요.첫날엔 아무 변화도 없었어요. 둘째 날에도 그대로."이게 되는 게 맞나."이런 생각이 여러 번 스쳤어요. 셋째 날 아침에 열어봤을 때 표면에 아주 작은 기포가 몇 개 보였어요.그날 이후로 하루에 두 번씩 밥을 주기 시작했어요.같은 양의 밀가루와 물.하루하루 정말 조심스럽게 다뤘어요. 5일째 되던 날 아침이었어요.병 안이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있었고 표면엔 반.. 더보기
꿀의 얼굴 - 아카시아 꿀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빵에 꿀을 넣을 때"꿀은 다 같은 꿀이지"그렇게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어요.레시피에 "꿀 30g" 이라고 적혀 있으면집에 있는 아무 꿀이나 그대로 넣었어요.수확 시기가 다르든,꽃이 다르든 그건 별로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한 선배가 저한테 꿀 네 병을 나란히 놓아주셨어요.아카시아 꿀밤꿀잡화꿀유채꿀"같은 레시피, 꿀만 바꿔서 각각 구워봐."솔직히 그때는 큰 차이가 안 날 거라 생각했어요.같은 밀가루, 같은 이스트, 같은 온도, 같은 시간.꿀만 바뀌었을 뿐인데 얼마나 달라지겠나 싶었어요. 오븐에서 나온 네 개의 빵을 나란히 놓았을 때저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어요.색이 다 달랐어요.아카시아 꿀로 만든 건 은은한 밝은 갈색밤꿀로 만든 건 진한 갈색, 거의 캐러멜색잡화꿀로 만.. 더보기
‘건강한 빵’이라는 말에 대해 -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 처음 이 빵집을 떠올렸을 때,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건강한 빵’이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하고,그래서 더 쉽게 사용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그래서일까요.이 말을 꺼낼 때마다조금은 조심스러워집니다. 요즘 ‘건강한’이라는 말은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당을 줄인 빵,칼로리가 낮은 빵,특정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빵. 이런 기준들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담다브레드가 생각하는 ‘건강함’은조금 다른 방향에 있습니다. 단순히 무엇을 ‘빼는 것’이 아니라,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덜 달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그로 인해 전체의 맛이 무너지지 않는지,재료를 줄이는 대신다른 방식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먹었을 때몸이 부담스럽지 않은지까지 함께 생.. 더보기
작은 빵집이 할 수 있는 정직함 - 규모보다 태도의 문제 빵집을 떠올리면요즘은 아주 큰 베이커리들도 많습니다.넓은 공간,다양한 메뉴,하루 종일 채워지는 진열대. 그 모습은 분명 멋지고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줍니다.하지만 그런 곳들을 바라보면서담다브레드는 가끔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작은 빵집은어떤 방식으로 빵을 만들어야 할까.크기보다 중요한 것 작은 빵집은모든 것을 많이 할 수는 없습니다.메뉴도 많지 않을 수 있고,하루에 굽는 양도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조금 더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바로 태도입니다. 어떤 재료를 선택할지,얼마나 신선한 상태로 빵을 내어드릴지,어떤 기준을 포기하지 않을지.이런 결정들은가게의 크기보다빵을 만드는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대형 베이커리는많은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해야 .. 더보기
겨울의 끝자락에서 굽는 빵 - 가장 추운 달에 가장 단단해지는 기준 1월의 주방은 유난히 차분합니다.문을 열면 찬 공기가 먼저 들어오고,반죽은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손이 닿는 모든 것이조금씩 더 천천히 반응합니다. 이 계절의 반죽은사람의 조급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조금만 서두르면 발효는 흐트러지고,조금만 방심하면 온도는 금세 어긋납니다.그래서 겨울의 빵은기술보다 태도를 먼저 묻습니다. 1월의 온도는빵을 만드는 사람에게 늘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지금 기다릴 수 있는가.조금 더 지켜볼 여유가 있는가. 여름처럼 밀어붙일 수 없고,가을처럼 자연에 맡기기도 어렵습니다.이 계절에는 손이 더 많이 개입하게 됩니다.덮어주고, 옮겨주고,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옆에 머문답니다. 겨울 발효는 느립니다.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반죽은 스스로 자리를 잡습니다.급하게 부풀지 않는 대신속.. 더보기
빵을 계속 배우는 이유 -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다짐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이 정도면 이제 혼자 해도 되지 않나요?”그럴 때마다잠깐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하게 됀다.아직은 아니라고. 빵은 알수록 쉬워지지 않았다처음엔하나라도 더 빨리 익히고 싶었다.반죽법, 온도, 시간, 레시피.공식처럼 외우면어느 순간 다 될 줄 알았다.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빵은 오히려 더 어렵게 다가왔다.같은 밀가루, 같은 물, 같은 손인데날마다 결과가 달랐고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틀리기도 했다.그때 알게 됐다.빵은 외우는 게 아니라계속 묻는 일이라는 걸. 배움은 기술보다 태도를 바꿨다 수업을 들을수록손기술보다 먼저 바뀐 건마음가짐이었다.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법,실패를 바로 버리지 않는 법,빵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배움은나를 더 잘 굽게 만들기보다더 천천히 만들었다.그리고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