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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이야기

달걀의 무게 - 같은 한 개인데 왜 다 다를까 레시피에 이렇게 적혀 있는 걸 자주 보시죠? "달걀 1개" 너무 익숙한 표현이라저도 오랫동안 아무 의심 없이 썼어요. 근데 어느 날부터 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이하루는 촉촉하고 하루는 뻣뻣해지는 일이 반복됐어요.밀가루도 같고,버터도 같고,심지어 오븐 온도까지 똑같이 잡았는데 결과가 자꾸 흔들렸어요. 원인을 못 찾고 헤매다가 한 선배가 무심하게 물었어요. "달걀은 그램으로 재?" 그날 처음 알았어요.달걀 한 개의 무게가 사이즈별로 20% 이상 차이 난다는 걸. 한국에서 유통되는 달걀은 등급이 이렇게 나뉘어 있어요.왕란: 68g 이상특란: 60~68g대란: 52~60g중란: 44~52g소란: 44g 미만"달걀 1개"라고만 적힌 레시피는 사실 정말 애매한 표현이었어요. 특란과 소란은 무게가 15g 넘게 차이 나.. 더보기
우유의 자리 - 물 대신 우유를 쓴다는 것 빵을 만들 때우유 대신 물을 써도 되나요?또는 반대로, 물 대신 우유를 쓰면 뭐가 달라질까요. 한 번쯤 궁금하셨던 적 있으신가요?저도 오랫동안 그랬어요."물이나 우유나 그냥 액체잖아."그렇게 생각했어요. R&D 시절 평소 식빵 레시피의 물을 우유로 바꿔본 적이 있어요.같은 밀가루,같은 이스트,같은 소금,같은 온도. 물만 우유로 바꿨을 뿐인데오븐에서 나온 빵이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았어요.색이 훨씬 노릇했고, 향이 은은하게 달았고,잘랐을 때 크럼이 손에 감기는 부드러움이었어요.한 입 먹었을 때 "이게 뭐지" 했어요. 그날 알았어요.우유는 그냥 액체가 아니라 빵의 인상을 바꾸는 재료라는 걸. R&D에서는 우유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로 봐요. 1. 풍미우유 안의 유당은 빵에 은은한 단맛을 남겨요.유지방은 .. 더보기
소금의 자리 - 1%가 빵 맛을 바꾼다는 걸 처음 안 날 빵에 들어가는 소금,그냥 짠맛 내는 거 아니에요?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어요.밀가루 1kg에 소금 20g.이 비율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20g이면 너무 짜지 않나?"R&D 시절, 저는 그날 한 가지 실수를 했어요.소금을 10g만 넣어본 거예요. 겉으로 봐서는 별 차이가 없었어요.반죽도 잘 만들어졌고,발효도 평소처럼 됐고,오븐에서 나온 빵의 색도 비슷했어요. 근데 한 입 먹는 순간 이상한 게 느껴졌어요.밍밍하다는 느낌이 아니었어요.뭔가 풍미 자체가 빠져 있었어요. 빵에서 나오던 그 깊은 향, 씹을수록 올라오던 단맛, 밀가루 본연의 고소함.그게 다 흐려져 있었어요. 같이 일하던 선배가 한 입 먹어보더니 말했어요."소금 줄였지?"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어요. "소금은 짠.. 더보기
버터의 두 얼굴 - 처음으로 발효 버터를 만난 날 빵에 들어가는 버터,그냥 다 비슷한 줄 알았어요.가염, 무염 정도만 구분했지 다른 종류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R&D 시절, 한 선배가 작은 버터 한 조각을 입에 넣어줬어요. "이거랑 평소 쓰는 거랑 비교해봐." 먼저 평소 쓰던 버터를 한 입.부드럽고, 고소하고, 익숙한 맛.그 다음에 그 작은 조각을 한 입. 향이 완전히 달랐어요. 고소한데 살짝 새콤하고,요거트 같은 깊은 향이 입 안에 오래 남아 있었어요."이게 같은 버터예요?"선배가 웃으면서 말했어요."그게 발효 버터야." 그날 처음 알았어요.버터에도 발효 라는 게 있다는 걸.발효 버터는 우유에 유산균을 넣고 발효시킨 다음 만든 버터예요. 영어로는 컬처드 버터 (Cultured butter) 또는 유럽식 버터라고도 해요.발효 과정에서 유산이 만들어지면.. 더보기
물의 무게 - 같은 레시피인데 다른 빵이 나오던 이유 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인데왜 어떤 날은 다르게 나올까. 오랫동안 답을 못 찾았어요. 밀가루도 같고,이스트도 같고,계량도 정확했는데빵의 풍미는 미묘하게 달랐어요.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건 물이었어요. R&D 시절,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어요. "빵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물이 제일 많은 거 알지?"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어요.반죽 무게의 60~70%가 물이거든요.근데 저는 그 물을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수돗물이든,정수기 물이든,페트병 물이든"같은 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선배가 작은 실험을 보여줬어요.같은 레시피 세 개를 만들고 물만 다르게 했어요.하나는 수돗물하나는 정수기 물하나는 미네랄워터같은 시간, 같은 온도에서발효했는데 빵이 다 달랐어요. 수돗물로 만든 건 색이 옅고,정수기 물로.. 더보기
이스트 한 봉지의 무게 - 효모를 죽이지 않고 살려 쓴다는 것 처음 빵을 만들 때저는 이스트를 죽인 적이 있어요. 뜨거운 물에 풀었거든요. "발효를 빨리 시키려면따뜻한 물이 좋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한참을 기다려도반죽이 안 부풀더라고요. 세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이스트가 다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이스트 봉지를 처음 받아보면 정말 작아요. 500g 밀가루에 들어가는 양이 겨우 5g 이에요. 근데 그 5g이빵 한 덩이 전체를부풀게 해요. 그 작은 가루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이스트는 효모예요. 학명은 Saccharomyces cerevisiae. 밀가루 안의 당분을 먹고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들어요. 이산화탄소가 반죽을 부풀게 하고알코올이 풍미를 만들어요. 근데 이 효모는 살아있는 미생물이에요. 40도가 넘으면 약해.. 더보기
밀가루 보관법 - 여름에 벌레 안 생기게 하는 R&D 노하우 여름에 밀가루 봉지를 열었더니 작은 벌레가 기어다닌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처음 그걸 봤을 때저는 한참 멍하니 있었어요. 새로 산 지 한 달도 안 된 강력분이었거든요. 봉지째 통째로 버렸어요. 그날부터 밀가루 보관을 R&D 관점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어요. 여름에 밀가루에 생기는 벌레는 대부분 밀가루게예요. 정식 이름은 거짓쌀도둑거저리.영어로는 Confused flour beetle. 이 벌레는 어디서 갑자기 오는 게 아니에요. 밀가루 자체에 알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겨울엔 부화하지 않고 있다가실온이 25도를 넘으면2~3주 만에 성충이 되거든요. 여름에 갑자기 보이는 이유가 이거예요. R&D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건 "개봉 즉시 옮겨 담아라" 예요. 종이 봉지나 비닐 봉지째로 두면공기·습기·해충.. 더보기
쿠키가 안 부푼 이유 - 베이킹파우더와 베이킹소다, R&D는 이걸 어떻게 다르게 보는가 쿠키를 구웠는데생각보다 안 부풀어서당황한 적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레시피대로 했는데 쿠키가 평평하게 누워있었거든요. 원인은 단순했어요. 베이킹소다와 베이킹파우더를같은 것으로 알고바꿔 넣었던 거였죠. 입문자 시각에서 보면둘은 비슷해 보여요. 흰 가루, 비슷한 모양,둘 다 빵을 부풀게 하는 재료. 하지만 R&D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화학 반응이에요. 베이킹소다는 알칼리성이에요.혼자서는 가스를 잘 못 만들어요. 산성 재료를 만나야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면서반죽을 부풀려요. 산성 재료가 뭐냐면 요거트, 레몬즙, 식초,버터밀크, 흑설탕, 카카오. 레시피에 이런 게 없는데베이킹소다만 넣으면? 반응할 상대가 없으니 안 부풀어요. 쿠키가 안 부푼 이유가바로 이거였어요. 저는 그날 레몬도, 요거트도,카카오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