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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순간들

8월 여름, 새벽 4시의 주방 - 폭염 속에서도 빵을 굽는 이유

낮에는 35도가 넘어가는 8월 한여름.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5분도 서 있기 힘든 계절이에요.

이런 날씨에 왜 굳이 빵을 굽나 싶으실 수도 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이 더위에 오븐까지 켜야 하나."

그런데도 새벽 4시가 되면 저는 어김없이 주방에 서 있어요.

 

새벽 4시의 주방은 낮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에요.

밖은 아직 어둡고, 공기는 시원해요.

에어컨 없이도 실온이 25도 정도로 유지돼요.

 

이 시간에 반죽을 시작하면 발효가 안정적으로 진행돼요.

여름 반죽에게는 새벽이 최고의 친구예요.

 

 

물이 시원해요.

수돗물이 낮보다 3~4도 낮게 나와요.

밀가루도 밤새 시원해진 상태고 버터도 딱 좋은 온도에 있어요.

 

이 모든 재료가 낮에는 30도 넘게 데워져 있어요.

같은 재료인데도 새벽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예요.

 

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려요.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 어디선가 문 여는 소리.

이 조용한 소리들 사이에서 반죽을 만지고 있으면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아니라 세상이 시작되는 느낌이에요.

 

한 손으로 반죽을 접고 다른 손으로 스크레이퍼를 잡고

반죽 온도를 확인하고 1차 발효 시간을 계산하고.

이 반복이 매일 같은데 매일 조금씩 달라요.

 

오늘의 밀가루가 어제와 다르고

오늘의 실온이 어제와 다르고 오늘의 내 손 컨디션이 다르니까요.

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건 사실 매일 다른 걸 만난다는 뜻이에요.

새벽에 이 감각이 가장 선명해요.

 

 

6시쯤 되면 밖이 밝아지기 시작해요.

그 무렵이면 1차 발효가 끝나가고

빵을 성형할 시간이에요.

7시엔 오븐을 켜고 예열을 시작하고

7시 40분엔 반죽이 들어가고 8시 5분엔 첫 빵이 나와요.

 

오븐 문을 열 때 나오는 그 향.

밖은 이제 완전히 밝아졌고 낮의 더위가 시작될 참이지만 주방 안엔 갓 구운 빵 향으로 가득해요.

이 순간을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요.

 

가끔 사람들이 물어요.

"왜 이 더위에 그렇게까지 하세요?"

저도 몇 번이나 스스로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이걸 왜 이렇게 하고 있지."

 

근데 답은 매번 같아요.

빵은 정직해요.

새벽에 만든 반죽과 낮에 만든 반죽은 다르게 나와요.

여름의 반죽은 새벽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얼굴이 있어요.

그 얼굴을 만나기 위해서 저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요.

 

폭염이 이 만남을 방해할 순 없거든요.

여름 새벽의 주방은 저에겐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성지예요.

낮보다 시원하고 낮보다 정직하고 낮보다 정성이 깊어지는 공간.

 

이 시간이 없다면 저의 빵은 지금과 다른 얼굴이었을 거예요.

혹시 이 여름 빵이 자꾸 무너진다 느끼신다면

한 번쯤 새벽에 반죽을 만나 보세요.

 

같은 레시피가 완전히 다른 빵으로 나올 거예요.

낮이 뜨거워도 저는 새벽에 만난 그 빵을 기억하며 오늘도 오븐 앞에 서 있어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