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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순간들

하루를 닫는 시간 - 오븐이 식어가는 저녁, 빵집 마감의 순서

그동안 담다브레드에는

아침 이야기를 참 많이 썼어요.

 

가을 아침, 오븐이 켜지기 전의 5분 처럼 하루가 시작되기 직전의 조용함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빵집에는 반대편 시간도 있어요.

오븐이 꺼지고, 진열대가 비어가고, 작업대 위에 밀가루 자국만 남는 시간.

예전에 하루의 끝에 굽는 빵 에서는
밤늦게 오븐 앞에 서는
고요한 시간을 이야기했었죠.

오늘은 굽기가 다 끝난 뒤,
작업장을 정리하고
불을 끄기까지의 시간이에요.

빵집의 마감,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신 적 있나요?

 

마감의 첫 순서는 오븐을 끄는 일이에요.

스위치를 내려도 오븐은 바로 식지 않아요.

데크 오븐은 두세 시간이 지나도 안쪽에 온기가 남아 있거든요.

저는 이 온기가 좋더라고요.

하루 종일 일한 오븐이 천천히 숨을 고르는 것 같아서요.

 

그다음은 작업대예요.

스크래퍼로 굳은 반죽 자국을 긁어내고, 밀가루를 쓸어 모아요.

믹서 볼에 붙은 반죽 찌꺼기는 물에 불려 두었다가 닦아내요.

 

반죽은 마르기 전에 치워야 해요.

굳어버리면 시멘트처럼 붙어서 두 배로 힘이 들거든요.

이건 몇 번 고생하고 나서야 몸에 익은 순서예요.

 

진열대에 남은 빵도 하나씩 세어봐요.

솔직히 말하면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마음이 복잡해요.

 

많이 남은 날은 '내가 뭘 잘못 판단했을까' 생각이 길어지고,

다 팔린 날은 '더 구울 걸 그랬나' 또 생각이 길어져요.

감으로 팔던 시절 에 쓴 것처럼, 기록하기 전에는 이 숫자를 그냥 흘려보냈어요.

 

지금은 남은 개수를 노트에 적어둬요.

남은 빵의 개수는, 내일 몇 개를 구울지 알려주는 숫자예요.

 

 

정리가 끝나도 바로 문을 닫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르방을 챙겨요.

르방을 살리는 일 에서 매일 먹이를 주는 이야기를 했었죠.

 

르방을 살리는 일 - 매일 반복하는 작은 의식

매일 아침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주방에 들어가서 유리병 하나를 확인하는 일. 그 안에는 르방이 살고 있어요.밀가루와 물로만 키워낸 자가효모. 거품이 얼마나 올라와 있는지,표면

damdabread.com

 

내일 아침에 쓸 르방은 오늘 저녁에 먹이를 줘야 해요.

밀가루와 물을 섞어주고, 뚜껑을 덮고, 온도가 맞는 자리에 놓아두면

밤사이 르방이 혼자 내일을 준비해요.

 

그러고 보면 마감은 하루를 끝내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일을 시작하는 일이에요.

아침의 5분은, 사실 전날 저녁에 이미 시작돼 있었어요.

작업대가 깨끗해야 새벽에 바로 반죽을 시작할 수 있고,

르방을 챙겨둬야 아침에 빵이 부풀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불을 끄기 전에 작업장을 한 번 둘러봐요.

깨끗해진 작업대, 가지런한 저울, 아직 따뜻한 오븐.

 

빵을 굽는 일은 오븐 앞의 화려한 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더라고요.

아무도 보지 않는 저녁의 정리가 다음 날의 빵을 받쳐주고 있어요.

담다브레드가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 기록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좋은 빵은, 전날 저녁을 잘 닫는 데서 시작돼요.

오늘 하루도 잘 닫으셨나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