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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이야기

설탕은 단맛만 내는 게 아니더라고요 - 보습·발효·색·식감의 비밀

빵에 들어가는 설탕,

단맛 조절 그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오랫동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식빵 레시피에 설탕 20g이 있으면

"조금 덜 달게 만들어볼까" 싶어서 그냥 반으로 줄여본 적이 있어요.

 

결과는 완전히 다른 빵이었어요.

색은 옅고, 발효는 뜬금없이 늦어졌고,

크럼은 예전 같은 부드러움이 없었어요.

같은 밀가루, 같은 이스트, 같은 시간인데

설탕 하나 줄인 것뿐인데 빵의 인상 전체가 달라졌어요.

 

그날 알았어요.

설탕은 그냥 단맛이 아니라 빵의 여러 얼굴을 만드는 재료라는 걸.

 

 

R&D에서는 설탕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로 봐요.

 

1. 단맛 (물론)

이건 가장 눈에 보이는 역할이에요.

빵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밀가루 대비 2~10% 정도 설탕을 넣어요.

  • 식빵: 2~5%
  • 단과자빵: 8~12%
  • 브리오슈: 10~15%

이 비율이 빵의 성격을 결정해요.

 

2. 이스트의 먹이 (발효 촉진)

이게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이스트는 당분을 먹고 활동해요.

 

밀가루 안에도 자연스러운 당분이 있지만 설탕을 넣으면 이스트의 활동이 훨씬 활발해져요.

특히 발효 초반에 힘을 실어줘요.

그래서 설탕이 부족하면 발효가 늦어지거나 빵이 잘 안 부풀어요.

 

다만 여기에 함정이 있어요.

설탕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이스트가 힘을 잃어요.

설탕 농도가 15% 이상이 되면 이스트의 삼투압 균형이 무너져서 활동이 둔해져요.

그래서 브리오슈처럼 설탕 많은 빵엔 내당성 이스트라는 특수한 이스트를 써요.

 

3. 마이야르 반응 — 색과 향

이게 정말 중요한 역할이에요.

빵을 오븐에 구우면 표면이 노릇하게 색이 변해요.

이걸 마이야르 반응 이라고 해요.

 

설탕과 아미노산이 높은 온도에서 만나 반응하면서

갈색이 나타나고 고소한 향도 만들어져요.

설탕을 줄이면 이 반응이 약해져서 빵의 색이 옅어지고 향이 얕아져요.

같은 온도, 같은 시간을 굽는데도

설탕 유무에 따라 색과 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4. 보습 — 부드러움 유지

설탕은 수분을 붙잡는 성질이 있어요.

빵 안의 수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르는 걸 설탕이 조금 늦춰줘요.

그래서 설탕이 들어간 빵은

설탕이 없는 빵보다 하루 더 부드럽게 남아 있어요.

식빵이 며칠 지나도 촉촉한 이유,

브리오슈가 이틀이 지나도 부드러운 이유가 바로 이 보습 역할 덕분이에요.

 

이제 궁금해질 거예요.

설탕 종류마다 차이가 있을까요?

R&D 관점에서 정리하면 이래요.

 

백설탕 가장 순수한 설탕. 단맛만 담백하게. 색이 밝게 나오는 빵에 적합.

황설탕 당밀이 조금 남아 있어 향이 살짝 있음. 빵에 은은한 캐러멜 향을 더해요.

비정제 설탕 (머스코바도·라파두라) 당밀 함량이 많아 향과 색이 진함. 호밀빵·통밀빵처럼 진한 빵에 어울림.

꿀·시럽 액체 형태라 수분이 들어감 (약 20%). 같은 양이면 다른 액체를 20% 정도 줄여야 해요. 향과 보습이 강함.

 

설탕 하나를 다르게 골라도 빵의 얼굴이 달라져요.

식빵에 백설탕 대신 황설탕을 넣으면 색이 살짝 진해지고 향이 깊어져요.

브리오슈에 꿀을 넣으면 훨씬 촉촉하고 향긋해져요.

작은 선택이 큰 차이를 만드는 재료가 설탕이에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아요.

"설탕을 아예 빼면 안 돼요?"

가능하긴 해요.

바게트·캉파뉴 같은 하드빵은 원래 설탕이 거의 안 들어가요.

밀 본연의 맛으로 승부하는 빵이니까요.

근데 부드러운 빵에서 설탕을 빼면 빵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돼요.

 

발효 느리고, 색 옅고, 금방 딱딱해지고.

"설탕을 뺀 빵"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빵"이 나와요.

이걸 알고 조정하는 것과 모르고 빼는 것은 결과가 달라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재료를 이해한다는 건 "이걸 왜 넣는지" 를 아는 일이에요.

설탕이 단맛만 낸다고 생각했을 땐 그냥 줄이거나 뺐어요.

근데 설탕이 하는 네 가지 일을 알고 나서는

설탕을 뺄 땐 다른 재료로 그 역할을 나눠서 채워요.

 

발효를 위해 이스트 조금 늘리고,

색을 위해 우유를 조금 더 넣고,

보습을 위해 유지 함량을 조정하고.

재료의 얼굴을 안다는 건 빵의 얼굴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에요.

 

오늘 만들 빵의 설탕 20g.

그저 "달콤함" 이 아니라 단맛 + 발효 촉진 + 색과 향 + 보습 이 네 가지가 다 담긴 20g이에요.

그렇게 다시 보면 같은 설탕 한 스푼도 전혀 다른 무게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