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에 들어가는 버터,
그냥 다 비슷한 줄 알았어요.
가염, 무염 정도만 구분했지 다른 종류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R&D 시절, 한 선배가 작은 버터 한 조각을 입에 넣어줬어요.
"이거랑 평소 쓰는 거랑 비교해봐."
먼저 평소 쓰던 버터를 한 입.
부드럽고, 고소하고, 익숙한 맛.
그 다음에 그 작은 조각을 한 입.
향이 완전히 달랐어요.
고소한데 살짝 새콤하고,
요거트 같은 깊은 향이 입 안에 오래 남아 있었어요.
"이게 같은 버터예요?"
선배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그게 발효 버터야."

그날 처음 알았어요.
버터에도 발효 라는 게 있다는 걸.
발효 버터는 우유에 유산균을 넣고 발효시킨 다음 만든 버터예요.
영어로는 컬처드 버터 (Cultured butter) 또는 유럽식 버터라고도 해요.
발효 과정에서 유산이 만들어지면서 풍미가 깊어지고 미세한 산미가 생겨요.
일반 버터가 "고소함" 이라면
발효 버터는 "고소함 + 깊이" 인 거예요.
그날 이후로 저는 빵에 따라 버터를 다르게 골랐어요.
크루아상 같은 버터 향이 주인공인 빵엔 발효 버터.
식빵이나 모닝빵처럼 다른 재료의 풍미를 살려야 하는 빵엔 일반 버터.
같은 양의 버터인데도 빵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솔직히 말하면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어요.
일반 버터의 1.5~2배 가격이거든요.
매번 쓰기에는 망설여졌어요.
"이걸 다 발효 버터로 바꾸면 원가가 너무 올라가는데..."
그런 생각을 며칠을 했어요.
근데 어느 날 깨달았어요.
모든 빵에 발효 버터를 쓸 필요는 없다는 걸.
빵마다 주인공이 다르거든요.
크루아상은 버터가 주인공.
호밀빵은 호밀 향이 주인공.
브리오슈는 달걀과 버터가 함께.
주인공일 때만 발효 버터를 쓰면 원가 부담도 줄고 빵의 정체성도 더 분명해져요.
가끔 그래요.
좋은 재료를 다 쓴다고 좋은 빵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재료.
그게 R&D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었어요.

요즘도 가끔 빵을 만들 때 발효 버터를 한 입 먹고 시작해요.
그날의 향이 그날 만들 빵의 방향을 정해주거든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그 짧은 순간이 빵을 만드는 자세를 바꿔놨어요.
가장 평범해 보이는 재료가 가장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걸 알게 된 게 저한테는 가장 큰 발견이었어요.
오늘 빵을 굽기 전에 버터 한 조각을 입에 넣어보세요.
거기서 시작되는 오늘의 빵이 있을 거예요.
빵을 굽는 사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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