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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이야기

밀가루 등급 T55·T65 뭐가 다를까 - 프랑스식 밀가루의 진짜 이야기

바게트 레시피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표현이 나와요.

 

"T55 밀가루 500g" "T65와 T80을 80:20으로 섞어서"

 

T 숫자가 도대체 뭔지 궁금하셨던 적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 프랑스 레시피를 접했을 때 이 부분에서 한참 헤맸어요.

한국에서 파는 밀가루는 강력분·중력분·박력분 이렇게 나뉘어 있잖아요.

 

"T55는 강력분인가, 중력분인가?"

이 질문의 답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더라고요.

 

먼저 T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부터.

프랑스에서는 밀가루 등급을 회분 함량으로 나눠요.

밀가루를 태우고 남은 재의 양을 회분(灰分, ash) 이라고 하는데

이게 밀알의 껍질(밀기울)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예요.

 

T 뒤의 숫자 = 회분 함량 × 100

 

즉, T55 = 회분 0.55%, T65 = 회분 0.65%, T80 = 회분 0.80%.

숫자가 클수록 밀기울이 많이 섞였다는 뜻이에요.

숫자가 작을수록 하얗고,

숫자가 클수록 갈색이 진해져요.

 

 

이제 각 등급의 용도를 볼게요.

 

T45 가장 하얀 밀가루. 회분이 매우 적어요.

케이크·크루아상 같은 결이 곱고 부드러운 제품에 사용.

한국의 박력분 과 성격이 비슷해요.

 

T55 프랑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밀가루.

식빵, 부드러운 롤, 일반 빵집의 식빵 종류에 자주 써요.

한국의 중력분~강력분 사이 성격.

 

T65 바게트·캉파뉴의 대표 밀가루.

밀 본연의 향이 살짝 남아 있고

글루텐도 튼튼해서 크러스트가 살아나는 빵에 좋아요.

한국의 강력분 과 비슷하지만

회분이 조금 더 있어서 향이 더 진해요.

 

T80·T110 호밀빵이나 통밀빵에 섞어 쓰는 밀가루.

색이 갈색이고 곡물 향이 강해요.

건강한 이미지의 빵에 자주 사용해요.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가 하나 있어요.

"T 숫자와 단백질 함량은 다른 지표예요."

한국 밀가루는 단백질 함량(글루텐 강도)으로 등급을 나눠요.

  • 강력분: 단백질 12~13%
  • 중력분: 단백질 10~11%
  • 박력분: 단백질 8~9%

프랑스 밀가루는 회분 함량으로 나누고 단백질은 별도로 표기해요.

그래서 T55가 항상 강력분인 건 아니에요.

 

T55 중에서도 단백질 10%짜리와 단백질 12%짜리가 다르게 팔려요.

레시피에서 "T55, 단백질 12%" 라고 두 지표를 같이 적는 이유가 이거예요.

 

 

한국에서 T55·T65를 구하기 어렵다면 대체 방법이 있어요.

 

T55 대체 강력분 90% + 박력분 10% 또는 강력분 단독 (단백질 11.5~12% 제품)

T65 대체 강력분 100% 또는 강력분 90% + 통밀가루 10% (회분 함량을 살짝 맞추기 위해)

T80 대체 강력분 70% + 통밀가루 30%

 

물론 100% 같은 결과는 아니지만 비슷한 성격을 낼 수 있어요.

 

저는 이걸 알기 전까지 T65 레시피에 강력분만 쓴 적이 많아요.

빵이 안 나오는 건 아니었어요. 근데 뭔가 밋밋했어요.

향이 얕고, 크럼 색이 하얗고, 바게트 특유의 깊이가 없었어요.

 

T65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알았어요.

"아, 회분에 향이 있는 거였구나."

밀기울의 미네랄과 미세한 향 성분이 빵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아요.

 

 

밀가루를 고를 때 한 번 라벨을 자세히 보세요.

"강력분" 이라고만 적혀 있다면 그건 넓은 범주예요.

가능하면 회분 함량과 단백질 함량이 함께 적혀 있는 밀가루를 골라요.

 

이 두 숫자가 명확할수록 같은 결과를 반복해서 낼 수 있어요.

밀가루의 이름을 안다는 건 빵의 얼굴을 정하는 일이에요.

 

"밀가루"가 아니라 "T65, 단백질 12%".

이렇게 정확히 부를 때 빵도 정확히 대답해줘요.

 

오늘 만들 빵의 밀가루가 어떤 등급인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거기서 시작되는 오늘의 빵이 있을 거예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