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만들 때
우유 대신 물을 써도 되나요?
또는 반대로, 물 대신 우유를 쓰면 뭐가 달라질까요.
한 번쯤 궁금하셨던 적 있으신가요?
저도 오랫동안 그랬어요.
"물이나 우유나 그냥 액체잖아."
그렇게 생각했어요.

R&D 시절 평소 식빵 레시피의 물을 우유로 바꿔본 적이 있어요.
같은 밀가루,
같은 이스트,
같은 소금,
같은 온도.
물만 우유로 바꿨을 뿐인데
오븐에서 나온 빵이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았어요.
색이 훨씬 노릇했고, 향이 은은하게 달았고,
잘랐을 때 크럼이 손에 감기는 부드러움이었어요.
한 입 먹었을 때 "이게 뭐지" 했어요.
그날 알았어요.
우유는 그냥 액체가 아니라 빵의 인상을 바꾸는 재료라는 걸.
R&D에서는 우유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로 봐요.
1. 풍미
우유 안의 유당은 빵에 은은한 단맛을 남겨요.
유지방은 고소함을 더하고, 유단백질은 감칠맛을 만들어요.
같은 밀가루인데 훨씬 깊은 맛이 나오는 이유예요.
2. 색
유당은 굽는 과정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촉진해요.
물로 만든 빵보다 색이 훨씬 진하게 나와요.
같은 온도, 같은 시간에 구웠는데 겉이 노릇한 갈색으로 익어요.
3. 크럼의 부드러움
유지방이 반죽 안에 퍼지면서 글루텐 구조에 유연성을 줘요.
그래서 우유가 들어간 빵은 크럼이 부드럽고 결이 곱게 나와요.
특히 브리오슈나 모닝빵처럼 부드러움이 생명인 빵엔 우유가 필수예요.
4. 보존성
유지방은 빵 안에서 수분이 마르는 속도를 늦춰줘요.
같은 시간이 지나도 우유가 들어간 빵이 하루 더 촉촉하게 남아 있어요.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바로 궁금해지는 게 있어요.
"그럼 물 자리에 우유를 그대로 넣으면 되나요?"
정답부터 말하면 아니에요.
우유는 완전히 액체가 아니거든요.
우유 100g에는 물 87g + 유지방·단백질·유당 13g이 들어 있어요.
즉, 물 자리에 우유를 그대로 넣으면 실제 수분은 13% 부족해져요.
반죽이 되직해지고, 발효가 조금 늦어져요.
R&D에서는 이렇게 조정해요.
우유 사용 시 물 대비 5~10% 더 넣기.
또는 일부를 물+우유 반반으로 섞어서 수분 균형을 맞춰요.
그럼 언제 우유를 쓰고 언제 물을 써야 할까요.
R&D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래요.
우유가 어울리는 빵
- 모닝빵
- 브리오슈
- 부드러운 식빵
- 단과자빵
물이 어울리는 빵
- 바게트
- 하드빵·캉파뉴
- 사워도우
- 치아바타
물로 만든 빵은 밀가루 본연의 맛과 향을 살려요.
우유로 만든 빵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남겨요.
같은 밀가루로도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우유를 처음 넣어봤던 그날 이후로
저는 재료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물 하나 바꿨을 뿐인데 빵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재료의 자리를 알아간다는 건 빵을 이해하는 일이더라고요.
물 대신 우유를 넣는다는 건 그냥 다른 액체로 바꾸는 게 아니에요.
어떤 빵을 만들고 싶은지 다시 정하는 일이에요.
오늘 만들 빵을 떠올려 보세요.
밀가루의 담백한 향이 주인공인 빵이라면 물을,
부드러움과 은은한 단맛이 주인공인 빵이라면 우유를.
그 작은 선택 하나에서 오늘의 빵이 결정되거든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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