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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이야기

물의 무게 - 같은 레시피인데 다른 빵이 나오던 이유

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인데

왜 어떤 날은 다르게 나올까.

 

오랫동안 답을 못 찾았어요.

 

밀가루도 같고,

이스트도 같고,

계량도 정확했는데

빵의 풍미는 미묘하게 달랐어요.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건 이었어요.

 

 

R&D 시절,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어요.

 

"빵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물이 제일 많은 거 알지?"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어요.

반죽 무게의 60~70%가 물이거든요.

근데 저는 그 물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수돗물이든,

정수기 물이든,

페트병 물이든

"같은 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선배가 작은 실험을 보여줬어요.

같은 레시피 세 개를 만들고 물만 다르게 했어요.

  • 하나는 수돗물
  • 하나는 정수기 물
  • 하나는 미네랄워터

같은 시간, 같은 온도에서

발효했는데 빵이 다 달랐어요.

 

수돗물로 만든 건 색이 옅고,

정수기 물로 만든 건 무난하고,

미네랄워터로 만든 건 향이 진했어요.

 

 

그날 처음 알았어요.

물은 그냥 H₂O가 아니라는 걸.

 

물 안에는

미네랄, 염소, 칼슘, 마그네슘이 종류별로 다 다르게 들어 있어요.

 

수돗물에는 염소가 있어요.

효모를 약화시키는 성분이에요.

 

연수(미네랄 적은 물)는

글루텐을 약하게 만들어요.

 

경수(미네랄 많은 물)는

글루텐을 단단하게 잡아줘요.

 

같은 빵이 안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 뒤로 저는 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수돗물을 쓰려면 받아두고

한 시간쯤 둬서 염소를 날려요.

 

장기 발효 빵엔 경도가

적당한 정수기 물.

특별한 향을 살리고 싶을 때는

미네랄 함량 표시된 생수.

 

같은 물이 아니라 오늘의 빵에 맞는 물을 골라요.

 

물 한 컵의 차이가

빵 한 덩이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저는 그날 처음 알았어요.

가장 흔한 재료가 가장 큰 변수였던 거예요.

 

장마철엔 또 다른 변수가 더해져요.

공기 중 습도가 높아지면

밀가루가 수분을 머금으니까

물의 양도 같이 조정해야 해요.

 

물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이게 안 보여요.

 

 

요즘 빵을 만들 때마다

물을 따르면서 잠깐 멈춰요.

"오늘 이 물은 어떤 물일까."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그 짧은 순간이 빵을 만드는 자세를 바꿔놨어요.

가장 흔한 재료를 무심히 다루지 않는 일.

 

그게 결국 좋은 빵을 만드는 시작이더라고요.

 

가끔 그래요.

레시피를 의심하기 전에 가장 익숙한 재료를 다시 보세요.

 

답은 거기 있을 때가 많거든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