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밀가루 봉지를 열었더니 작은 벌레가 기어다닌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처음 그걸 봤을 때
저는 한참 멍하니 있었어요.
새로 산 지 한 달도 안 된 강력분이었거든요.
봉지째 통째로 버렸어요.
그날부터 밀가루 보관을 R&D 관점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어요.
여름에 밀가루에 생기는 벌레는 대부분 밀가루게예요.
정식 이름은 거짓쌀도둑거저리.
영어로는 Confused flour beetle.
이 벌레는 어디서 갑자기 오는 게 아니에요.
밀가루 자체에 알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겨울엔 부화하지 않고 있다가
실온이 25도를 넘으면
2~3주 만에 성충이 되거든요.
여름에 갑자기 보이는 이유가 이거예요.

R&D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건
"개봉 즉시 옮겨 담아라" 예요.
종이 봉지나 비닐 봉지째로 두면
공기·습기·해충이 다 들어와요.
밀폐 용기로 옮기는 게 기본이에요.
추천하는 건
- 두꺼운 PP 또는 유리 밀폐 용기
- 입구가 넓어서 계량컵 들어가는 사이즈
- 실리콘 패킹이 있는 제품
두 번째는 냉장·냉동 보관이에요.
여름철 실온이 28도를 넘으면
밀가루 안 알이 부화하기 시작해요.
소량 자주 쓰는 양은 냉장 (0~5도),
장기 보관할 양은 냉동 (-18도) 으로
나눠서 보관하면 안전해요.
다만 냉장·냉동에서 바로 꺼내 쓰면 결로가 생겨요.
물방울이 밀가루에 닿으면
산패와 곰팡이가 빠르게 와요.
꺼낸 뒤에는 30분 이상 실온 적응 후 사용하세요.

세 번째는 월계수잎이에요.
이건 R&D에서도 의견이 갈리는데
저는 효과를 봤어요.
밀폐 용기 안에
마른 월계수잎 2~3장을 넣어두면
밀가루게가 잘 안 생겨요.
월계수의 시네올 성분이
해충을 기피하게 만든다는 연구가 있어요.
비용도 거의 안 들고
밀가루 맛에도 영향이 없어요.
네 번째는 선입선출이에요.
새 밀가루를 위에 올리지 마세요.
기존 밀가루를 다 쓰고 새 봉지를 여는 습관이 안 전한 이유예요.
베이커리에서는 보관 통에 개봉일 날짜를 적은 라벨을 붙여요.
강력분 기준
- 상온 보관: 3개월 이내
- 냉장 보관: 6개월 이내
- 냉동 보관: 1년 이내
이게 R&D에서 쓰는 기준이에요.
다섯 번째는 공기 차단이에요.
소량씩 진공 팩에 나눠 담으면
가장 오래 가요.
산소와의 접촉이 줄어서
산패도 늦춰지고
벌레도 못 들어와요.

밀가루 한 봉지를 잘 보관하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 있어요.
근데 저한테는 재료를 대하는 첫 번째 약속이에요.
좋은 빵은
좋은 재료에서 시작되고
좋은 재료는
보관에서 결정되거든요.
여름이 오면
밀가루 봉지부터 한 번 보세요.
봉지째 두고 계셨다면 지금이 옮겨 담을 때예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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