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배우기 시작하면
누구나 한 번쯤
‘도구 욕심’이라는
벽에 부딪힙니다.
처음에는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튜브 영상 속 반짝이는
반죽기와 전문 제빵사들의 손에 들린 도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 도구만 있으면 나도 저렇게 멋진 빵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반죽기 하나로 시작해보려다,
어느새 계량저울을 0.1g 단위까지 잴 수 있는
정밀한 제품으로 바꾸고,
다양한 크기의 발효 바구니와 스크래퍼, 쿠키 틀, 온도계까지…
작은 주방 한쪽이 도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 많은 도구 중 실제로 손이 가는 건
몇 가지뿐이었습니다.
빵을 배우면서 깨달은 건,
도구는 어디까지나
‘보조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반죽의 상태를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만져가며 배우는 과정은
어떤 도구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은 무겁고 불편하더라도
손으로 반죽을 치대며
그 안에서 오는 질감과 변화를 느낄 때,
도구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좋은 도구는 필요합니다.
발효를 안정적으로 돕는 바구니나
일정한 두께로 밀어주는 롤러는
업의 효율을 높여주죠.
하지만
모든 도구가 다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모든 걸 갖추면,
손으로 부딪히며 배워야 할
소중한 경험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죽기를 쓰기 전에 손으로 반죽해본 사람은
반죽기의 움직임과 속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도구를 살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 도구가 없으면 빵을 만들 수 없을까?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금 있는 도구로 충분할까?”
대부분의 경우 답은 후자였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도구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지금 손에 쥔 도구로 어떤 마음으로 반죽을 대하는가였습니다.
도구 욕심과 현실 사이에서
저는 조금 늦게 배우는 법을 익혀가고 있습니다.
빵을 더 잘 굽기 위한 길은
비싼 장비에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림을 배우는 발효의 순간처럼,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차근차근 손끝으로 익혀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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