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노트 한 권을 다시 펼치게 됩니다.
새 노트를 꺼내기보다는,
지난 해에 쓰다 만 페이지들을 먼저 넘겨보지요.
빵을 배우며 남긴 메모들,
반죽 비율 옆에 적힌 짧은 감정,
잘 되지 않았던 날에 그어놓은 작은 표시들.
이 노트는 계획서라기보다
시간이 쌓인 기록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성공한 것만 적으려 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패한 날의 메모가 더 많아지게 되었지요.
“수분 과다”,
“기다리지 못함”,
“오늘은 마음이 급했다.”
기술적인 기록 사이에
사람의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1월에 다시 읽어보면
그 메모들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몰랐던 이유들이
이제야 또렷해집니다.
왜 그 반죽이 말을 듣지 않았는지,
왜 그날의 빵이 마음에 남지 않았는지.
이 노트는
잘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차분히 바라보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새해가 되면 흔히 목표를 적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빈칸으로 두었습니다.
대신 지난 해의 기록을 다시 정리하지요.
반복된 실수는 무엇이었는지,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올해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답니다.
더 빠르게 가야 할 곳이 아니라,
조금 더 머물러야 할 자리.
무언가를 추가해야 하는 부분보다,
지켜야 할 감각.
1월의 노트는
다짐보다 질문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올해의 빵을 조금씩 바꿀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새 페이지를 급하게 채우지 않습니다.
지난 해의 글씨 위에
조용히 손을 얹고,
올해도 같은 질문을 다시 적어봅니다.
왜 이 빵을 굽는지.
어떤 속도로 가고 싶은지.
그 질문을 품은 채,
1월의 작업대를 다시 정리합니다.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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