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 서면,
작업대 위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굽지 않은 반죽은 없는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
올해도 나는 많은 반죽을 만졌습니다.
손에 익숙해진 것도 있었고,
끝내 원하는 결을 만들지 못한 것도 있었지요.
어떤 반죽은 오븐에 들어가기 전에 접어두었고,
어떤 생각은 아직 꺼내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 굽지 못한 것이 꼭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했던 날도 있었고,
아직 내 손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날도 있었지요.
그때는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반죽들은 나에게
‘아직’이라는 시간을 알려준 것 같았습니다.

빵을 만들며 배운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
모든 반죽이 같은 날,
같은 속도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급하게 굽는다고 맛이 따라오지 않고,
기다린다고 해서 늘 정답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다만,
지금은 굽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나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빵을 만들기보다,
왜 이 빵을 만들고 싶은지를 묻는 시간이 늘었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뤄진 것들,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이렇게 ‘남은 반죽’처럼 한 해의 끝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남아 있음이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해로 가져갈 재료가 생긴 느낌이지요.
지금은 굽지 않았지만,
시간이 더해지면 분명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깨닫았습니다.
모든 반죽을 오늘 굽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남겨진 생각들 역시,
언젠가 나에게 꼭 필요한 온도와 시간을 만나
자연스럽게 완성될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이 남은 반죽들을
실패가 아니라 준비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2026년 다음 해의 작업대를 닦습니다.
아직 굽지 않은 이야기들을 품은 채로.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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