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걸어온 길을 한 번 뒤돌아볼 때가 있어요.
몇 년 동안 하나씩 만들어온 도구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다섯 개가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것 하나,
잠시 멈춰 있는 것 하나까지 더하면 일곱 개의 도구가 이 지도 위에 있어요.
오늘은 그 지도를 한번 펼쳐보려고 해요.
첫 번째. 베이커리 용어사전 (Step 01)
지난 7월 3일에 정식으로 공개한 도구예요.
이 도구를 만들면서 가장 오래 고민했던 건 "같은 단어를 R&D 책과 현장이 다르게 쓴다" 는 문제였어요.
오토리즈, 오버나잇, 발효종·사워도우·르방·자가효모.
문서에 쓰인 정의와 베이커리 현장에서 쓰는 언어가 달라서 입문자들이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용어사전은 그 간극을 메우려고 만든 도구예요.
R&D 정의 + 현장 표현 + 헷갈리는 지점. 이 세 가지를 함께 적는 게 원칙이에요.
지금은 200개 정도 등록돼 있고 매주 조금씩 추가하고 있어요.

두 번째. 재료 대체 가이드 (Step 02)
버터가 없을 때 무엇으로 대체할지, 우유 대신 두유를 쓰려면 얼마나 넣어야 할지, 계란 없는 반죽을 어떻게 만들지.
이 대체 표를 매번 노트에서 찾는 게 번거로워서 만들었어요.
특히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 비건 베이킹을 하시는 분들이 대체를 자주 하시니까요.
이 도구는 "어떤 재료를 대신 쓸까"가 아니라 "그 재료가 원래 뭐 하고 있었는지" 를 알려주는 데 초점을 뒀어요.
역할을 알면 대체가 쉬워지거든요.
세 번째. 레시피 배율 변환기 (Step 03)
베이커즈 퍼센트 기반 자동 계산 도구.
식빵 500g 반죽을 3kg으로 늘리고 싶을 때 밀가루 무게만 바꾸면 나머지 재료가 자동으로 계산돼요.
R&D 시절 저는 이 계산을 매번 엑셀로 두드렸어요.
그러다 실수로 소금 20g을 200g으로 잘못 계산한 적이 있었어요. 그날 반죽 15kg을 다 버렸어요.
그 실수가 이 도구를 만들게 한 계기였어요.
네 번째. 반죽 온도 계산기 (Step 04)
여름·겨울 반죽 온도를 잡을 때 물 온도를 몇 도로 해야 할지 매번 계산하는 게 번거로워서 만들었어요.
목표 반죽 온도 × 3 - (실온 + 밀가루 온도 + 마찰열)
이 공식을 매번 계산하지 않아도 값만 입력하면 물 온도가 바로 나와요.
여름철 홈베이커에게 특히 많이 쓰이고 있어요.

다섯 번째. 공정 타이머 (Step 05)
빵 하나를 만들 때 믹싱·1차 발효·벤치타임·2차 발효·굽기.
각 단계마다 시간이 다르고 동시에 여러 종류의 빵을 만들면 시간이 겹쳐요.
이걸 스마트폰 기본 타이머로만 관리하기 어려워서 베이커리용 다중 타이머를 만들었어요.
여러 개의 발효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고 각 단계의 알림이 따로 울려요.
작은 도구 같지만 새벽 4시에 반죽을 여러 개 돌리는 사람에게는 가장 든든한 도구예요.
여기까지가 지금 완성되어 있는 다섯 개예요.
그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것 하나.
여섯 번째. 원가계산 시스템 (Step 06 - 개발 중)
이 도구는 위 다섯 개와 성격이 달라요.
앞의 다섯 개는 베이커의 작업을 돕는 도구였다면 이건 베이커의 경영을 돕는 도구예요.
레시피 원가·인건비·오버헤드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빵 하나의 진짜 원가를 정리해줘요.
7월 말부터 3명의 테스터와 함께 다듬고 있어요.
정식 출시는 아직 시점을 정하지 않았어요.
준비가 될 때까지 차분히 만들려고 해요.
담다브레드에서 이전에 다룬 베이커스 노트에 또 도구를 만들고 있어요 라는 글에서 도구를 만들 때의 원칙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이 도구가 사라지게 만드는 작업은 뭘까" 이 질문 하나를 계속 스스로에게 던져요.
그리고 잠시 멈춰 있는 것 하나.
일곱 번째. 식품 표시사항 생성기 (Step 07 - 보류)
원래 이 도구는 원가계산 시스템 다음으로 바로 만들 계획이었어요.
홈베이커가 판매·나눔을 시작할 때 필요한 원재료명·알레르기·소비기한 라벨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도구예요.
8월에 이 도구에 대한 글(홈베이커도 식품 표시사항 필요할까) 도 썼어요.
근데 지금은 잠시 멈춰 있어요.
원가계산 시스템에 집중하려고 우선순위를 다시 잡았거든요.
한 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만들면 어느 것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
한 번에 하나씩 정성 있게.
이게 지금 저의 원칙이에요.
식품 표시사항 생성기는 원가계산 시스템이 정식 출시된 후에 다시 이어서 만들 계획이에요.
이렇게 지금까지의 도구들을 정리해 보니 저에게 몇 가지가 보여요.
1. 도구는 늘 실수에서 태어났어요.
매번 저 자신의 실수·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남에게도 쓸모 있는 도구가 됐어요.
2. 도구가 늘어날수록 원칙은 좁아졌어요.
처음엔 "다 만들자" 였는데 지금은 "한 번에 하나씩" 이에요.
3. 어떤 도구는 완성됐고, 어떤 도구는 진행 중이고, 어떤 도구는 멈춰 있어요.
전부 다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 지도는 계속 넓어질 거예요.
다음에 만들 도구가 무엇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새 실수가 새 도구를 만들 거고, 새 필요가 새 방향을 정해줄 거예요.
지금 이 지도를 펼쳐 놓고 보니
"내가 이걸 다 만들었구나" 하는 마음보다 "아직 만들 게 많구나" 하는 마음이 더 커요.
부담이라기보다는 조용한 다행이에요.
빵을 만들 게 남아 있는 것처럼, 만들 도구도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게 저에게는 계속 걷게 하는 이유예요.
혹시 저의 도구 중 아직 안 써보신 것이 있다면 베이커스 노트 에 한 번 들러 보세요.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오늘도 저는 지도 위 어딘가에 서서 다음 자리를 조용히 그려보고 있어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담다브레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답장이 없는 시간을 배우고 있어요 - 침묵이 알려준 것들 (0) | 2026.09.25 |
|---|---|
| 출시를 조금 더 늦추기로 했어요 - 왜 시간을 더 두기로 했는지 (0) | 2026.09.11 |
| 테스터가 사용을 시작한 밤 - 답장을 기다리며 (0) | 2026.09.04 |
| 도구를 처음 다른 사람 손에 맡긴 날 - 곧 시작될 그 순간에 대하여 (0) | 2026.08.21 |
| 테스터 여정을 마치며 - 작은 인원으로 시작합니다 (0) | 2026.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