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반죽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밀가루와 물,
소금, 그리고 작은 발효종을 섞어 놓고
덮개를 덮었을 때는
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없었어요.
그저
‘과연 이게 빵이 될까?’
하는 의문뿐이었죠.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 덮개를 살짝 걷는 순간,
작은 기적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차분히 잠들어 있던 반죽이
서서히 숨을 쉬고 있었어요.
작은 기포들이 보글보글 올라와 표면을 간질이고,
손끝으로 만져보니
이전보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 순간,
반죽이 단순한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발효에서 나는 향은 참 묘합니다.
처음에는 새콤하고 낯선 냄새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고소한 곡물 냄새와 어우러지며
마치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향을 맡는 동안,
‘기다림 끝에 오는 변화’
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조급함 대신 차분해지고,
손으로는 반죽을 만지면서도
마음으로는 저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발효는
단순히 반죽을 부풀리는 과정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효모들이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미묘한 움직임,
그 안에서 서로 기대고 협력하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빵이란 결국 자연의 선물이고
우리는 그저 돕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지금도 반죽을 발효시킬 때면,
늘 그 첫날의 감동이 떠오릅니다.
빵을 만든다는 건 기술 이전에 기다림을 배우는 일,
그리고 겸손히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날 이후로 발효의 향기를 맡으면 늘 초심이 떠오릅니다.
빵을 굽는 일은 삶을 닮아 있습니다.
서두른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기다린다고 반드시 원하는 모양이 되지도 않죠.
다만 정성을 다해 지켜보며, 필요한 만큼의 시간과 온도를 허락할 때,
비로소 빵도, 그리고 제 마음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빵을 굽는 남자 올림
'빵을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과 손길이 만든 결, 크루아상 이야기 (0) | 2025.09.17 |
---|---|
작은 실패가 알려주는 큰 배움 (0) | 2025.09.12 |
빵을 배우는 순간, 기술보다 마음이 먼저 (0) | 2025.09.08 |
연남동에서 배운 크로와상의 태도 - 크로와상랩 방문기 (1) | 2025.09.03 |
빵을 배우는 길,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1) | 2025.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