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한쪽에
적혀 있는 글씨는 대부분 작다.
잘된 날의 기록보다,
잘 안 된 날의 기록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죽이 무너졌던 날,
발효가 과했던 날,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마음이 먼저 내려앉았던 날들.
그런 날의 기록은 이상하게도 더 조심스럽게 적게 된다.
어느 날은
반죽이 유난히 질었다.
레시피는 분명 같았고,
손의 감각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반죽은 끝내 원하는 탄력을 찾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적어 내려가며
그날의 온도, 습도, 반죽을 만지던 내 마음 상태까지 함께 적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반죽은 실패라기보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을 조용히 알려준 신호였다.

실패한 빵은 말이 없다.
다만 식어가는 표면과 기대와 다른 결이
‘다음엔 다르게 해보라’는 메시지를 남길 뿐이다.
그 메시지를 그냥 넘기지 않기 위해
나는 실패를 노트에 남긴다.
기억보다 기록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실패를 적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린 것 같아서다.
그리고 다음 반죽 앞에 설 때,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솔직해진다.
담다브레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실패 노트는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노트가 두꺼워질수록
빵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나 역시 조금씩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패는 숨기고 싶은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페이지다.
그래서 오늘도 노트를 덮지 않고,
다음 장을 남겨둔다.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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