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종류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예요.
식빵, 바게트, 캉파뉴를 지나 오늘은 조금 사치스러운 빵으로 가볼게요.
브리오슈.
이름만 들어도 버터 향이 먼저 떠오르는 빵이죠.
혹시 브리오슈를 손으로 찢어보신 적 있나요?
결이 실처럼 길게 늘어나면서 찢어져요.
그 결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브리오슈는 프랑스 빵이에요.
그런데 바게트나 캉파뉴와는 출발점이 완전히 달라요.
바게트가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 네 가지로 만드는 빵이라면
브리오슈는 물 대신 계란과 우유, 그리고 아주 많은 버터로 만들어요.
배합을 숫자로 보면 실감이 나요.
밀가루를 100으로 잡으면
계란 50~60 버터 50~70 설탕 10~15 소금 2 이스트 3~4
버터가 밀가루의 절반을 넘어요.
배합에 따라서는 버터가 밀가루와 같은 양까지 올라가기도 해요.
처음 이 배합표를 봤을 때 솔직히 "이게 빵이 되나?" 싶었어요.
계란의 얼굴 — 흰자와 노른자가 각자 하는 일 에서 노른자의 레시틴 이야기를 했었죠.
계란의 얼굴 - 흰자와 노른자가 각자 하는 일
레시피에 이렇게 적혀 있는 걸 자주 보시죠?"흰자 2개" 또는 "노른자 3개"같은 계란인데 왜 어떤 레시피는 흰자만, 어떤 레시피는 노른자만 쓸까요?저도 이 부분을 오래 헷갈렸어요. "계란은 그냥
damdabread.com
브리오슈에서 노른자가 하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물과 기름을 이어 붙이는 일.
버터가 이만큼 들어가도 반죽이 분리되지 않는 건 노른자 덕분이에요.
그리고 버터의 세계 에서 버터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했는데요.
브리오슈는 그 차이가 가장 정직하게 드러나는 빵이에요.
버터가 반죽의 절반이니까 버터 맛이 곧 빵 맛이 되거든요.
브리오슈 반죽에서 제일 중요한 건 순서예요.
버터는 마지막에, 나눠서.
처음부터 버터를 다 넣으면 글루텐이 제대로 생기지 못해요.
버터가 밀가루 단백질을 감싸서 서로 연결되는 걸 막거든요.
그래서 먼저 밀가루, 계란, 설탕, 이스트로 글루텐을 충분히 만들어요.
반죽이 매끈해지고 얇게 늘렸을 때 막이 생기면
그때 버터를 서너 번에 나눠 넣어요.

여기서 제일 애먹는 게 반죽 온도예요.
믹싱 시간이 길다 보니 마찰열로 반죽 온도가 계속 올라가요.
24℃를 넘기면 버터가 녹기 시작해요.
버터가 녹아 기름이 배어 나오면 반죽이 번들거리고
질어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래서 브리오슈를 할 때는 계란도 우유도 차갑게 꺼내 쓰고,
버터는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살짝 들어갈 만큼만 풀어둬요.
처음엔 이 온도를 못 잡아서 반죽을 두 번이나 버렸어요.
버터만 500g이 들어간 반죽이었는데, 버리면서 손이 떨리더라고요.
반죽이 끝나도 바로 굽지 않아요.
브리오슈는 하룻밤을 재워요.
1차 발효를 짧게 한 뒤 냉장고(3~5℃)에서 12시간 정도 차갑게 둬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성형이에요.
버터가 많은 반죽은 상온에서 손에 다 달라붙어요.
차갑게 굳혀야 버터가 단단해지고 모양이 잡혀요.
또 하나는 맛이에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하면서 버터와 계란의 풍미가 반죽 안에서 차분하게 정리돼요.
다음 날, 차가운 반죽을 분할해서 모양을 만들어요.
작은 머리를 얹은 브리오슈 아 테트(à tête),
공 여러 개를 틀에 나란히 넣은 브리오슈 낭테르(Nanterre).

2차 발효는 27~28℃ 정도로 조금 낮게 해요.
발효기 온도를 너무 올리면 버터가 녹아서 반죽이 주저앉거든요.
계란물을 바르고 180℃ 전후에서 구워요.
틀에 넣은 낭테르는 25~30분 정도 걸려요.
갓 구운 브리오슈를 찢으면 처음에 말했던 그 결이 나와요.
길게, 실처럼 늘어나는 결.
충분히 만든 글루텐 사이사이에 버터가 얇게 자리 잡은 거예요.
글루텐이 뼈대를 세우고, 버터가 그 사이를 채운 결이에요.
시리즈 1편 식빵 — 가장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빵 에서 브리오슈 식빵을 잠깐 이야기했었죠.
같은 틀에 굽는 빵이어도 버터와 계란이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다른 빵이 돼요.
브리오슈를 만들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이 빵은 재료를 숨길 수가 없다는 것.
버터가 별로면 빵이 별로고, 계란이 신선하지 않으면 바로 맛으로 드러나요.
재료값도 만만치 않아요.
버터만으로도 식빵 몇 개 값이 나오는 반죽이니까요.
그래서 브리오슈는 좋은 재료를 쓰고, 그걸 망치지 않는 빵이라고 생각해요.
사치스러운 건 재료가 아니라, 재료를 대하는 태도인지도 몰라요.
다음 시리즈 5편은 버터를 반죽에 섞는 대신 반죽 사이에 겹겹이 접어 넣는 빵, 크루아상이에요.
라미네이션의 세계로 같이 가볼게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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