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사러 가면 포장에 숫자가 크게 적혀 있어요.
55%, 64%, 70%.
혹시 이 숫자를 "쓴맛의 정도"라고만 생각하고 계셨나요?
저도 오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숫자는 쓴맛이 아니라
초콜릿 안에 카카오가 얼마나 들었는지를 말해요.
카카오 함량은 카카오 매스와 카카오 버터를 합친 비율이에요.
카카오 콩을 갈아 만든 덩어리가 카카오 매스,
그 콩에서 짜낸 기름이 카카오 버터예요.
70% 초콜릿이라면 나머지 30%는 대부분 설탕이에요.
55%라면 설탕이 45% 가까이 되는 거고요.
숫자가 올라갈수록 쓴 게 아니라, 설탕이 줄어드는 거예요.
빵에서는 이게 꽤 큰 차이예요.
같은 양을 넣어도 70%를 넣은 반죽과 55%를 넣은 반죽은 설탕이 15%나 차이 나니까요.
초콜릿만 바꿨는데 단맛이 달라졌다면 이 숫자 때문이에요.

숫자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어요.
그 지방이 정말 카카오 버터인가.
제과 재료상에 가면 초콜릿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있어요.
커버처 초콜릿과 컴파운드 초콜릿.
커버처는 카카오 버터가 넉넉히 들어간 초콜릿이에요.
체온에서 사르르 녹고 향이 길게 남아요.
대신 템퍼링을 해야 윤기와 '똑' 부러지는 식감이 나와요.
컴파운드는 카카오 버터 대신 식물성 유지를 넣은 초콜릿이에요.
템퍼링 없이 녹여 쓰기만 하면 되고 값도 훨씬 싸요.
대신 입에서 녹는 느낌이 둔하고 끝맛에 기름감이 남아요.
구분하는 법은 간단해요.
포장 뒷면 원재료명을 보세요.
식물성 유지, 팜핵유 같은 이름이 보이면 컴파운드예요.
식품공전에서도 '초콜릿'과 '준초콜릿'을 코코아 고형분 기준으로 나눠두고 있어요.
지난 버터의 세계 에서 버터의 지방이 맛을 만든다고 했었죠.
초콜릿도 똑같아요. 어떤 지방이냐가 입안의 기억을 정해요.
솔직히 말하면 컴파운드를 쓰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어요.
커버처는 같은 1kg에 컴파운드의 서너 배 값이 나가거든요.
원가표를 들여다보면 초콜릿 한 줄이 제일 먼저 눈에 걸려요.
원가를 어디까지 넣어야 하는지는 한 시간 작업한 빵, 진짜 얼마짜리일까 에서 자세히 이야기했었어요.
그런데 원가에서 제일 큰 숫자가, 맛에서도 제일 큰 숫자더라고요.
블라인드로 먹어보면 대부분 차이를 알아요.
뭐가 다른지 설명은 못 해도 "이쪽이 더 맛있다"는 건 알더라고요.
빵에 넣을 땐 한 가지를 더 봐야 해요.
오븐에 들어가는 초콜릿인가, 오븐에서 나온 뒤 쓰는 초콜릿인가.
쿠키나 빵 반죽에 섞어 굽는 초콜릿은 '베이크 스테이블' 제품을 써요.
지방 구성을 조절해서 200℃ 오븐에서도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만든 초콜릿이에요.

일반 커버처를 잘라 넣으면 오븐에서 녹아 퍼지면서 반죽 안에 초콜릿 웅덩이가 생겨요.
그게 매력일 때도 있어요.
뺑 오 쇼콜라 속에서 녹진하게 녹아 나오는 초콜릿처럼요.
반대로 구운 뒤 코팅하거나 장식할 때는 커버처를 템퍼링해서 써요.
다크 초콜릿 기준으로
45~50℃로 녹이고 27~28℃까지 식혔다가 31~32℃로 다시 올려요.
이 세 번의 온도가 윤기와 식감을 결정해요.

가을, 겨울이 되면 초콜릿을 찾는 손님이 늘어요.
견과류 — 가을 빵의 손님 에서 이야기한 헤이즐넛과 아몬드도 이 계절엔 초콜릿 옆에 자주 앉고요.
그래서 이맘때는 초콜릿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져요.
몇 %를 쓸지, 커버처로 갈지, 구울 건지 바를 건지.
재료를 이해하면 비싼 재료를 써야 할 곳과 아껴도 되는 곳이 보여요.
무조건 비싼 걸 쓰는 것도, 무조건 아끼는 것도 아닌 그 사이의 판단.
담다브레드가 재료 이야기를 계속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포장에 적힌 숫자 하나를 읽는 일이, 결국 빵 맛을 고르는 일이었어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
'재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버터의 세계 - 가염·무염·발효·유럽 버터, 각자 다른 이유 (0) | 2026.10.21 |
|---|---|
| 견과류 - 가을 빵의 손님 (호두·아몬드·헤이즐넛의 얼굴) (0) | 2026.10.14 |
| 계란의 얼굴 - 흰자와 노른자가 각자 하는 일 (0) | 2026.10.07 |
| 소금의 얼굴 - 정제염·천일염·게랑드가 각각 다른 이유 (1) | 2026.09.30 |
| 호밀의 얼굴 - 밀보다 오래된 곡물이 반죽에 남기는 것 (0) | 202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