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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이야기

소금의 얼굴 - 정제염·천일염·게랑드가 각각 다른 이유

몇 달 전 소금의 자리 — 1%가 빵 맛을 바꾼다는 걸 처음 안 날 이라는 글에서

소금이 빵에서 하는 역할 네 가지를 다뤘어요.

 

맛 조절, 글루텐 강화, 발효 조절, 보존성.

 

그 글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썼어요.

"비싼 버터보다 좋은 소금을 먼저 챙긴다"

그런데 정작 "어떤 소금을 골라야 하는지" 는 짚지 못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이어서 해볼게요.

소금의 종류 이야기예요.

 

저도 처음엔 소금은 다 같은 소금인 줄 알았어요.

"짠맛만 내면 되는 거 아냐?"

 

근데 아니었어요.

같은 양의 소금을 넣어도 어떤 소금을 골랐느냐에 따라 빵의 인상이 달라졌어요.

 

소금은 짠맛만 내는 재료가 아니라 미네랄이 담긴 재료예요.

그 미네랄이 소금마다 다르기 때문에 빵의 맛도 미묘하게 달라져요.

 

한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금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볼게요.

 

1. 정제염 (Refined Salt)

바닷물에서 나트륨과 염소만 뽑아내 99.5% 이상의 순수한 소금.

  • 색: 아주 하얀 색
  • 맛: 순수한 짠맛
  • 미네랄: 거의 없음
  • 결정: 아주 곱고 균일함

가장 흔하고 저렴한 소금. 공장식 정제로 미네랄이 모두 제거됐어요.

 

베이킹에서: 짠맛 조절만 필요할 때 사용. 결정이 곱아서 반죽에 균일하게 섞임.

 

2. 천일염 (Sea Salt / 신안 천일염)

바닷물을 자연 증발시켜 만든 소금.

  • 색: 옅은 회색빛
  • 맛: 짠맛 + 은은한 단맛 + 감칠맛
  • 미네랄: 마그네슘·칼슘·칼륨 다수 포함
  • 결정: 굵고 불규칙

한국 신안 천일염이 대표적이에요.

 

베이킹에서: 반죽에 넣으면 짠맛에 깊이가 있어요.

특히 하드빵·캉파뉴·호밀빵에 잘 어울려요.

결정이 굵어서 반죽에 넣기 전 곱게 갈아 쓰거나 소금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해요.

 

3. 게랑드 소금 (Guérande / Fleur de Sel)

프랑스 게랑드 지역에서 손으로 채취한 천일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금 중 하나예요.

  • 색: 옅은 회색 또는 하얀색
  • 맛: 부드러운 짠맛 + 미네랄의 감칠맛
  • 미네랄: 매우 풍부 (마그네슘 특히 많음)
  • 결정: 얇은 조각 형태

특히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 이라 불리는 게랑드 소금 중 가장 상급 결정은 

소금 결정이 물 위로 떠오른 것을 손으로 걷어낸 거예요.

 

베이킹에서: 반죽에 넣기보다는 마감용으로 많이 써요. 포카치아 위, 브레첼 표면, 프레츨 마감에 결정 그대로 뿌려서 씹히는 짠맛과 미네랄을 살려요.

가격은 정제염의 20~50배지만 그만한 값을 하는 소금이에요.

 

 

4. 히말라야 핑크 소금

파키스탄 히말라야 산맥의 암염.

  • 색: 옅은 분홍색
  • 맛: 순수한 짠맛 + 미묘한 광물 향
  • 미네랄: 84종의 미네랄 (그중 철분이 색을 만듦)
  • 결정: 매우 다양

건강식품으로 유명하지만 베이킹에서는 활용도가 낮아요.

색이 반죽에 미묘한 분홍빛을 남길 수 있고

미네랄 향이 강해서 빵의 담백한 맛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정제염이나 천일염 대체로는 부적합.

 

소금 고르는 기준.

같은 짠맛이라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미네랄의 차이 때문이에요.

정제염은 짠맛만 내지만

천일염과 게랑드는 미네랄이 살아 있어서 빵의 풍미에 입체감을 더해요.

특히 오랜 발효가 필요한 빵 (사워도우·캉파뉴·호밀빵)에서 차이가 커요.

 

정제염: 짠맛만 정확히 조절하고 싶을 때

천일염: 반죽에 깊이를 더하고 싶을 때

게랑드: 마감에 씹히는 특별함을 더하고 싶을 때

히말라야: 마감용 장식으로만 (극히 소량)

 

한 가지 주의할 점.

같은 무게의 소금이라도 결정 크기에 따라 실제 짠맛이 다르게 느껴져요.

 

예를 들어

  • 정제염 5g → 짠맛이 강하게 느껴짐 (결정 곱아서 반죽 전체에 퍼짐)
  • 굵은 천일염 5g → 짠맛이 살짝 덜함 (결정이 커서 부분적으로만 짠맛)

반죽에 넣을 때 같은 그램 무게로 시작하되 결정 크기에 따라 미세 조정해요.

굵은 천일염이면 10~15% 정도 더 넣거나 반죽에 잘 녹도록 미리 소금물로 만들어요.

 

담다브레드의 예전 감성 톤 글 소금, 빵의 숨은 조연 에서 소금을 "숨은 조율자" 라고 표현했어요.

오늘 이 글은 그 조율자의 얼굴을 다르게 그린 편이에요.

 

정제염은 담백한 조율자.

천일염은 깊이 있는 조율자.

게랑드는 마감을 완성하는 조율자.

같은 소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각자 다른 얼굴로 반죽에 참여해요.

 

혹시 지금까지 소금을 딱 한 종류만 쓰셨다면 한 번쯤 다른 소금을 시도해 보세요.

  • 평소 정제염을 쓰셨다면 → 천일염 한 봉지 사보기
  • 이미 천일염 쓰신다면 → 마감용으로 게랑드 소금 한 병
  • 게랑드를 마감에 쓰신다면 → 반죽에도 넣어보기

작은 소금 한 스푼의 차이가 빵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아요.

재료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간다는 건 빵의 얼굴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에요.

오늘 만들 빵의 소금 그저 "소금 5g" 이 아니라

"천일염 5g" 또는 "게랑드 5g" 이라고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순간

빵도 정확한 얼굴로 대답해줄 거예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