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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브레드 이야기

원가를 손으로 계산한다는 것 - 숫자보다 손끝을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

빵을 처음 팔기 시작했을 때,
나는 노트 한 권을 샀습니다.


격자 칸이 있는 그 노트에
밀가루의 무게를 적고,
버터 가격을 적고,
가스비를 나누고,
인건비를 얹었지요.

계산기를 옆에 두고,
지우개를 자주 썼다지웠다 하기도 했답니다.

틀리면 지우고,
다시 적고,
또 틀리면
다시 지웠습니다.

그렇게 한 페이지를 완성하면
그 숫자를 한 번 바라보다가,
대부분 그냥 덮어두기만 했답니다.

노트는 점점 두꺼워졌지만,
나는 여전히 계산보다
손끝을 믿었기 때문인것 같아요.


사실 내가 믿은 건
계산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 빵이 이 가격이면
팔릴 것 같다는 감각.

저 빵은 조금 더 받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

그 감각이 먼저였고,
노트의 숫자는
나중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거죠.

"원가 계산보다 손이 먼저야."

베이커리를 오래 운영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나도 한동안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던 거죠.

반죽의 상태를 알고,
발효 시간을 조절하고,
오븐의 온도를 귀로 듣는 것처럼.

가격도 그런 감으로
맞춰나가는 거라고.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빵이
어떤 날은 남고
어떤 날은 부족했어요.

재료 가격이 오른 달에도
나는 가격을 그대로 뒀고.

계산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계산을 했지만,
그 결과보다
감을 더 믿었기 때문인거죠.

감이 틀린 건지,
계산이 틀린 건지.
그조차 오래 알지 못했습니다.

빵은 매일 구웠지만,
원가는 오랫동안 모른 채였습니다.


빵 하나의 원가를
제대로 계산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배합표 안의 재료 하나하나,
구매 단가,
사용한 무게,
총 생산 수량.

거기에 포장재,
소분된 스프레드,
아주 조금씩 들어가는 향신료까지.

노트 한 페이지가 빽빽해집니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빵을 굽는 건지
회계사가 된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깐요.

그래서 대부분의 날은
끝까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대략의 수치를 머릿속에서 추려,
적당하다 싶은 가격으로 정했기 때문이지요.

가끔은 그 가격이
꽤 잘 맞기도 했고.
그러면 감이 맞다고
더 믿게 되었습니다.



그게 실수였는지 아닌지는,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나는
그 노트를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재료와 무게를 입력하면
원가가 자동으로 계산되는,
나 같은 베이커리 운영자를 위한
작은 프로그램.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만들다가 막히고,
고치고,
다시 만드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만들면서
자꾸 그 노트가 생각납니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던 그 페이지들.

그 비효율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손끝의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감각이 진짜 감각인지.
아니면
귀찮음을 피하려는 합리화인지.

이제는 구별하고 싶습니다.

숫자는 감각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감각이 얼마나 정확한지
가끔 확인해줄 수는 있기 때문이지요.

 

 

 

 

빵을 굽는 남자 올림